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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고의 침입과 대흥 전투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35
한자 蒙古-侵入-大興戰鬪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윤용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236년(고종23)연표보기 - 몽고의 침입과 대흥 전투 발발
발생|시작 장소 대흥현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지도보기
성격 전투
관련 인물/단체 대흥수령|대흥현

[정의]

1236년(고종 23) 고려를 침입한 몽고군의 공격을 격파하였던 지금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인 대흥에서의 전투.

[개설]

몽고군의 침입에 대흥현민들은 산성 안에 들어가 저항하며 적에게 반격을 가하여 크게 격파하였다.

[역사적 배경]

예산은 북방 변경으로부터 다소 남쪽으로 떨어져 있는데다가 서해안으로 치우쳐 있어서 이민족의 직접적 침입은 드물었다. 그러나 13세기 몽고의 침입 때 대흥에서 큰 전투가 벌어졌다. 몽고군의 고려 침입은 1231년(고종 18) 개시되어 1259년(고종 46)까지 이어졌는데, 대소 6차[11회]의 침입이 되풀이되었다.

[경과]

몽고군이 예산의 대흥에서 전투를 벌인 것은 3차 침입 시기인 1236년(고종 23) 12월의 일이다. 당시 대흥현의 보고에 의하면, “몽고군이 여러 날 성을 공격하므로 성문을 열고 나가 싸워 적을 대파하고 많은 병기를 빼앗았다.”라고 한다. 몽고군이 침입하자 대흥현의 수령은 지역민들을 이끌고 산성에 입보하고 있었다. 몽고군이 성을 포위하고 강하게 공격하자, 성안의 대흥 사람들은 견고히 성을 지키는 한편 틈을 보아 성을 나가 요격하여 적을 크게 물리쳤다. 당시 대흥현민이 들어간 산성은 백제부흥운동 당시 거점이 되었던 임존성, 지금의 봉수산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봉수산성[임존성]은 관아에서 멀지 않고, 기왕에도 백제부흥운동이라는 커다란 전쟁 속에서 4년에 걸쳐 방어전을 수행했던 험한 지형의 전략 요새였다. 적이 여러 날 공격하고도 뜻을 이루지 못한 데는 봉수산성이 갖는 방어상의 여건이 도움이 되었다.

[결과]

대흥현민들의 견고한 방어와 반격으로 몽고군은 대파되고, 얼마 후 몽고군은 고려에서 철수하였다.

[의의와 평가]

1236년 예산 대흥전투는 수령 지휘하의 산성 입보민이 몽고군의 공격에 대항하여 적을 크게 격파한 사건으로서 역사적 의미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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