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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의 침입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36
한자 倭寇-侵入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윤용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377년(우왕 3) 9월연표보기 - 왜구의 침입
발생|시작 시기/일시 1381년(우왕 7) 5월연표보기 - 왜구의 침입
발생|시작 장소 왜구의 침입 장소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지도보기
성격 사건
관련 인물/단체 흥언(興彦)

[정의]

고려 말 왜구가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 침입한 사건.

[개설]

예산은 왜구 방어의 거점으로서 이산[지금의 덕산]에 설치된 도절제사영(都節制使營)이 1377년(우왕 3) 9월과 1381년(우왕 7) 5월에 각각 왜구의 공격을 받았다.

[역사적 배경]

고려에서 왜구의 침입이 본격화되는 것은 1350년(충정왕 2)부터인데, 1350년부터 1391년까지 왜구가 침입한 지역 수는 전국적으로 600개소에 이르렀다. 충청남도에서 왜구가 침입한 첫 기록은 1349년(공민왕 원년) 3월, 포왜사(捕倭使) 김휘남(金暉南)이 25척 선단으로 풍도(楓島)에서 왜구 20척을 만났다는 기록이다. 이 무렵 아산만 일대에 왜구가 출몰하였던 것이다. 1367년(공민왕 18) 11월 왜구가 천안, 온양, 예산, 면천 조운선을 약탈하였는데, 이에 아산에서 왜구 선박 3척을 나포하고 적의 수급 2급을 바쳤다고 한다.

[경과]

예산 지역은 왜구가 노리던 전략 지역은 아니었다. 아산만에서 삽교천을 타고 들어와야 하는 번거로운 조건 때문으로 보인다. 다만 이산에 설치된 도절제사영의 경우는 왜구의 공격 목표가 되었다. 연해에서 준동하는 왜구를 겨냥하여 최영의 건의로 설치된 군영이었기 때문이다. 1377년 9월 왜구가 홍주를 쳐서 목사 지득청의 처를 죽이고 판관의 처자를 포로로 한 다음 이산영(伊山營)을 불 질렀다고 하였다. 수년 후인 1381년 5월 왜구는 다시 이산수(伊山戍)를 공격하였다. 이에 양광도 도순문사 흥언(興彦)이 싸워 적을 물리치고 왜구 8급을 참하고 1인을 포로로 잡았다.

[결과]

예산은 왜구 방어의 거점으로서 이산 도절제사영이 설치된 곳이었다. 이산영은 1416년(태종 16) 왕명에 의하여 해미로 옮겨지고 그 자리에는 덕풍현과 이산현을 통합한 덕산현의 관아가 자리하게 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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