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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51
한자 光世驛
이칭/별칭 광시역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광시리
시대 고려 /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대
집필자 곽호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준공 시기/일시 고려시대 - 광세역 개설
개칭 시기/일시 조선 세종 전후 - 광세역에서 광시역으로 변화
특기 사항 시기/일시 1896년(건양 1) 1월연표보기 - 광세역 폐지
최초 설립지 광세역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광시리 지도보기

[정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지역에 설치되었던 역.

[개설]

광세역(光世驛)은 조선시대 충청도의 도로망인 금정도(金井道)에 소속된 역으로 대흥, 공주, 홍주, 예산, 청양 등의 지역과 연결되는 곳에 있었고, 이들 지역의 여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였다. 고려시대에는 광세역(光時驛)이라 하였고, 조선 세종 때부터 광시역으로 바뀌었다. 대흥현 일남면 광시리[현재 예산군 광시면 광시리]에 있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역(驛)은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공문의 전달과 사신 및 관리의 여행에 마필(馬匹)을 제공하고 변방의 군정을 보고하던 곳이며,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원(院)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에 역원(驛院)이라 통칭되었다. 역도(驛道)는 도로의 상태와 중요도 및 산천의 거리에 따라 여러 개의 역을 묶어 찰방(察訪)[종6품]이나 역승(驛丞)[종9품]의 지휘 감독 아래 순행(巡行)·고찰(考察)하면서 역을 관리하는 체계이다. 전국의 각 역에는 찰방, 역승의 관장하에 역장(驛長)·역리(驛吏)·역졸(驛卒) 등을 두어 역정(驛政)의 관리와 공역을 맡게 하였다.

[관련 기록]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149권 충청도조에서 “감목관(監牧官)이 1명이요, 역승이 9명이다. … 금정도의 관할 역이 11곳이요, 광시·세천·용곡·급천·순성·흥세·풍전·하천·몽웅·해문·청연[監牧官一人 驛丞九人. … 金井道所管驛十一, 光時, 世川, 龍谷, 汲泉, 順城, 興世, 豐田, 下川, 夢熊, 海門, 淸淵].”이라 하였다. 『세조실록』 29권, 세조 8년(1462년) 8월 5일 정묘조에 “병조에서 아뢰기를, 이보다 먼저 제도(諸道)의 참역 또는 역승을 파하고 각각 그 부근에다 합하여 하나의 길을 만들어서 찰방을 두었으나, 관할 역이 많고 길이 멀리 떨어져서 찰방이 두루 살피기가 어려우므로 역로(驛路)가 조잔(凋殘)하니, 이제 다시 마감(磨勘)하여 대·중·소의 역로 및 원근을 나누어서 그 전의 역승을 각 역로에 차견(差遣)하여 찰방마다 역승 1명을 더 두게 하소서. 삼가 뒤에 갖추어 아룁니다.···금정역·광시역·용곡역·세천역·몽웅역·해문역·청연역·풍전역·하천역 이상 9역은 금정도승(金井道丞)으로 일컫을 것[兵曹啓: “在先諸道站驛或罷, 驛丞各以附近合爲一道置察訪, 然所管驛多道里遙隔, 察訪未易遍察, 驛路凋殘, 今更磨勘分大中小驛路及遠近, 已前驛丞差遣各路, 每一察訪加設驛丞一. 謹開具于後.··· 金井驛, 光時驛, 龍谷驛, 世川驛, 夢熊驛, 海門驛, 靑淵驛, 豐田驛, 下川驛已上九驛, 稱金井道丞.”]이라고 하였다.

[변천]

『고려사(高麗史)』 권82, 병지(兵志) 참역(站驛)조에 따르면 고려시대에 전국에 22개 역도(驛道)를 설치하였었고, 광세역은 그중 하나인 충청주도(忠淸州道)에서 관할하는 34개 역 중의 한 곳이었다.

고려시대 충청주도 34역의 현재 명칭과 위치는 다음과 같다. 동화(同和)[지금의 경기도 수원시]·장족(長足)[수원시]·청호(菁好)[수원시]·가천(嘉川)[경기도 안성시 양성면]·율봉(栗峰)[충청북도 청주시]·쌍수(雙樹)[청주시]·저산(猪山)[청주시]·장지(長地)[청주시]·장양(長楊)[충청북도 진천군]·퇴량(堆粮)[진천군]·연산(燕山)[세종특별자치시]·금사(金沙)[세종특별자치시]·포곡(蒲谷)[세종특별자치시 전의면]·성환(成歡)[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신은(新恩)[천안시]·금제(金蹄)[천안시]·장세(長世)[충청남도 아산시]·창덕(昌德)[아산시 신창면]·이흥(理興)[아산시]·일흥(日興)[충청남도 예산군]·광정(廣庭)[충청남도 공주시]·일신(日新)[공주시]·탄평(坦平)[공주시]·은산(銀山)[충청남도 부여군]·유구(維鳩)[공주시]·유양(楡楊)[충청남도 청양군 정산면]·급천(汲泉)[예산군 덕산면]·홍주(洪州)[충청남도 홍성군]·광세(光世)[예산군 광시면]·금정(金井)[충청남도 청양군]·득웅(得熊)[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몽웅(夢熊)[서산시 해미면]·영유(靈楡)[부여군 임천면]·비웅(非熊)[부여군 홍산면] 등이다.

고려시대에 설치된 광세역은 조선 세종 때부터 금정도에 소속된 11역의 한 곳으로 역승의 관할 하에 있었고, 조선 후기에도 계속 금정도 소속으로 편제되어 있었다.

조선시대의 역원 제도는 고려의 제도를 계승하였다. 그러나 광세역의 명칭에 대해 『세종실록지리지』 149권 대흥현조에 “광세(光世)”라 기록하면서 “세속에서 ‘광시(光時)’라고 잘못 사용하고 있다.”라고 하였고, 같은 책 충청도조에는 금정도(金井道) 관할 11역의 한 곳으로 “광시(光時)”라고 기록하였다. 이후의 자료들은 모두 광시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면, 본래의 명칭이 광세였으나 세종 때에는 이미 광시로 변화한 것으로 보인다.

조선 후기 영조 때에는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 대흥 역원조에 “광시역이 금정도 소속으로 군[대흥] 남쪽 19리[약 7.46㎞]에 있다. 역리 22명이 있으며, 노비는 없다. 상등마 2필, 중등마 3필, 하등마 5필이 있다[光時驛金井道所屬在郡南十九里驛吏二十二人奴婢兼上等馬二匹中等馬三肀下等馬五匹].”라고 기록되어 있다.

광시역은 근대화 과정에서 정치·사회제도가 변화하고, 교통이 발달하면서 폐지되었다. 즉 1896년(건양 1) 1월 대한제국 칙령 제9호 ‘각 역 찰방 및 역속 폐지에 관한 건’에 따라 광시역은 역사에서 사라지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이 통폐합될 때, 광시역이 있었던 곳은 광시면 광시리라 이름하여 예산군에 편제되었다.

[의의와 평가]

광시역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지방의 공무수행 관리에게 역마 및 숙박의 편의를 제공하고 중앙과 지방의 연락 업무를 목적으로 현재의 예산군 광시면 광시리에 설치하였던 교통·통신제도이다. 국가 경영상 중요한 기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품계가 높지 않은 찰방[종6품]과 역승[종9품]의 관할 하에 있었고, 역제(驛制) 운영상 폐단이 많아지면서 편제의 변화를 초래하였다. 다만 ‘역말’, ‘역촌’ 등 현재의 지역 명칭에 '역'자가 사용되는 곳이 그 기능을 하였던 곳으로 추정할 수 있을 뿐 그 흔적을 거의 찾을 수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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