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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공립농업학교 학생비밀결사사건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84
한자 禮山公立農業學敎學生秘密結社事件
이칭/별칭 예산농업학교 적색독서회사건,예산공립농업학교 독서회사건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이성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931년연표보기 - 예산공립농업학교 학생비밀결사사건 발생
종결 시기/일시 1932년연표보기 - 예산공립농업학교 학생비밀결사사건 종결
성격 독립운동단체
관련 인물/단체 예산공립농업학교|강봉주|정종호|한정희

[정의]

1930년대 초 충청남도 예산군의 예산공립농업학교에서 조직된 학생들의 항일 비밀결사 사건.

[개설]

1930년대 초 예산군에서는 예산공립농업학교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독서회, 좌익협의회, 예산공산주의학생동맹, 토요회 등을 조직하여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경과]

예산공립농업학교 학생인 강봉주(姜鳳周)·정종호(鄭鍾浩)·한정희(韓定凞) 등은 1931년경부터 사회과학 연구를 목적으로 독서회를 조직하였다. 강봉주·정종호·한정희 등은 1932년 김규환(金奎煥)·오일규(吳日圭) 등과 함께 1932년 5월 1일 예산의 금오산에서 기존의 독서회를 기반으로 좌익협의회를 조직하였다. 좌익협의회는 공산주의에 기초한 사회를 실현하는 것이 목적이었으며, 공산주의 사상 무장과 학생 규합을 위해 연구부·선전부·에스페란토부를 두었다. 예산공립농업학교에서는 1932년 7월 폭우가 쏟아지는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권농일(勸農日) 행사를 위해 학생들을 강제로 등교시켰다. 학생들은 ‘학생 동원의 부당성과 한인 학생들의 차별정책 철회’ 등을 주장하며 동맹휴학을 전개하였다. 좌익협의회원인 김규환과 오일규는 학생들과 함께 학교의 부당한 노력 봉사에 항의하기 위해 하숙방과 기숙사를 돌며 등교거부투쟁을 벌였다. 이 사건으로 김규환·오일규는 퇴학 처분을 받았고 좌익협의회는 해소되었다.

강봉주·정종호·한정희는 1932년 9월 18일 한정희의 집에서 박정순·박희남과 함께 사유재산제도를 부인하고 공산주의에 기초한 사회를 실현할 목적으로 ‘우리는 전투적 마르크스주의의 이론을 연구하고 투쟁한다.’는 강령을 제정하고 예산공산주의학생동맹을 조직하였다. 예산공산주의학생동맹은 1932년 10월부터 조직의 명칭을 토요회(土曜會)로 변경하고 김형래(金炯來)·박배훈(朴培薰) 등을 동지로 규합하였다. 1932년 11월 26일 경성의 극단 만경좌(萬鏡座)가 예산에서 「동방의 빛」을 상영하였다. ‘만주사변 중 만주에 있는 조선인들이 중국 마적에게 박해를 받고 살해될 때 일본군이 구원하고 보호한다’는 것이 주제였다. 강봉주는 「동방의 빛」 연극이 일제를 찬양하고 친일사상을 조장한다고 보고 서용하(徐龍河)·강찬희(姜讚熙)·김현창(金顯昶) 등과 함께 극단 대표를 만나 ‘이러한 연극을 상연하는 것은 조선민족의 치욕’이므로 연극 상연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였다.

[결과]

일제 경찰이 ‘예산농업학교적색독서회사건’이란 이름으로 강봉주를 비롯해 정종호·한정희·박배훈·김형래·김규환·오일규·박정순·박희남 등을 체포하여 투옥하면서 예산공산주의학생동맹은 해체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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