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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428
한자 修德寺遺物-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유물(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19]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류용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05월 17일연표보기 - 수덕사유물(거문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수덕사유물(거문고)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장처 수덕사 근역성보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19]지도보기
성격 악기
재질 나무|오동나무
크기(높이,길이,너비) 164㎝[가로]|20㎝[세로]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수덕사 근역성보관에 보관되어 있는 거문고.

[개설]

수덕사유물(거문고)수덕사에 있는 거문고로, 승려인 월면(月面)[1871~1946, 법호는 만공]이 고종[1852~1919]의 둘째 아들인 의친왕(義親王) 이강(李堈)[1877~1955]에게 받은 것이다. 거문고의 뒷면에는 조선시대 후기 대감식안(大鑑識眼)이었던 육교(六橋) 이조묵(李祖默)[1792~1840]이 새긴 ‘공민왕금(恭愍王琴)’이라는 글씨와 함께 만공의 시가 새겨져 있다.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9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형태]

재질은 오동나무이며 가로 164㎝, 세로 20㎝의 거문고에는 조선 후기의 서화가 이조묵이 ‘공민왕금’ 이라고 새겼으며, “일탄운시심 곡. 시체현곡야(一彈云是甚 曲. 是體玄曲也) / 일탄운시심 곡. 시구현곡야(一彈云是甚 曲. 是句玄曲也) / 일탄운시심 곡. 시현현곡야(一彈云是甚 曲. 是玄玄曲也) / 일탄운시심 곡. 시석여심중겁외곡야(一彈云是甚 曲. 是石女心中劫外曲也)”라는 만공의 시도 적혀 있다.

[특징]

거문고의 본래 주인은 고려시대 공민왕[1330~1374]으로, 야은(冶隱) 길재(吉再)[1353~1419]에게 전하여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일설에는 길재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조선 왕실의 보물로 전승되어 오다가 대원군이 소장하였다고 한다. 그 후 의친왕이 보관하였고, 1930년대 무렵 만공을 만나 신표로 건넸다고 한다. 1930년대 운현궁에 머물던 의친왕을 찾아온 만공과 문답을 나누면서 감화받은 의친왕은 “내가 비록 출가하지는 못하더라도 마음의 옷을 벗고 불법(佛法)에 의지하겠다.”라며 거문고를 건네었다고 한다. 이때 만공은 은사인 성우(惺牛)[1846~1912, 법호는 경허]에게 물려받은 염주를 의친왕에게 주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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