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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449
한자 禮山花田里石造四面佛像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물/불상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산62-3
시대 고대/삼국시대/백제,현대/현대
집필자 류용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토|발굴 시기/일시 1983년 -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발굴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11월 30일연표보기 -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보물 제79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보물 재지정
현 소장처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산62-3 지도보기
출토|발견지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산62-3
성격 불상|문화재
재질 납석(蠟石)
크기(높이) 310㎝[높이]|140㎝[너비]|80㎝[두께]
소유자 국유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에 있는 백제시대의 사면 불상.

[개설]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은 높이 310㎝, 너비 140㎝, 두께 80㎝의 납석(蠟石) 돌기둥 4면에 불상이 새겨져 있는 백제시대 유일의 사면불(四面佛)이다. 사면불은 일명 ‘사방불’이라고도 하는데,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사방 정토에 군림하는 신앙의 대상인 약사불, 아미타불, 석가불, 미륵불을 뜻한다. 돌기둥은 원래 남북 면이 넓고 동서 면이 더 좁은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원모습대로 다듬어 남·북·동·서의 순차에 따라 너비가 좁아지고 있다. 1984년 11월 30일 보물 제79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원래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은 1983년 예산군 봉산면 화전리 산62-3 산꼭대기 중앙에 커다란 돌이 반쯤 땅속에 비스듬히 넘어져 묻혀 있던 것을 국립공주박물관이 발굴·조사하고 나서 원위치인 암반 위에 세운 것이다. 발굴 결과를 보면, 불상이 쓰러져 있던 자리를 중심으로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법당이 세워져 있었으며 건물터 서쪽으로 6m 정도 떨어진 자리에서 탑이 있던 자리도 발견되어 금당과 탑이 동서로 나란히 있었음이 밝혀졌다. 주변에서는 작은 부처 머리 여럿과 사면불에서 떨어져 나간 부처 손 부분, 백제 토기와 기와 조각들, 고려시대의 청자 조각들이 발견되었다.

[형태]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은 백제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4면에 새긴 불상 중 삼존불은 좌상이고 그 외의 삼면은 입상으로 자연석에 조각된 불상이다. 전체적으로 중국 남북조의 양식을 따르고 있으면서도 백제 특유의 조각 수법이 나타나고 있다.

가장 넓은 남면불이 이 돌기둥의 주불(主佛)로 생각되며, 따라서 불전(佛殿)의 주불도 남방불로 생각된다. 남면 남방불상(南方佛像)은 현재 머리, 두 손, 오른쪽 무릎 부분 등이 파손되었다. 하지만 발굴 당시 머리의 발견으로 원모습을 충분히 복원하여 볼 수 있다. 머리 부분은 국립공주박물관에 보관되고 있다. 체구는 두꺼운 옷 속에 감싸여 있으며 장대한 상체에 어깨는 비교적 자연스럽게 흘러내렸다. 두 손은 결실되었다. 불의(佛衣)는 양어깨를 모두 덮고 내려 가슴 부분에서 완만한 유(U) 자형을 이루는 통견의로, 오른쪽 어깨를 덮어 내린 대의(大衣)의 한 자락은 가슴을 거쳐 배 아래로 내렸다. 그리고 왼쪽 어깨를 덮어 내린 대의의 한 자락은 거의 직선에 가깝게 흘러내려 다리를 거쳐 상현좌(裳懸座)[불의가 아래로 흘러내려 보이지 않는 대좌]를 이루고 있다. 특히 대의 안에 비슷한 불의를 입고 있다. 광배는 160㎝나 되는 거대한 주형 거신광(舟形擧身光)이다. 두광(頭光)은 연꽃무늬·빗살무늬·덩굴무늬가 차례로 새겨졌으며, 이 주위로 불꽃무늬가 외곽에 새겨져 있다.

동쪽 면의 동방 불상은 입상인데, 남방의 좌불상보다 다소 소박하고 단순하다. 등신대(等身大)의 동방 불상은 비교적 당당하고 세련된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즉, 넓은 가슴, 균형 잡힌 어깨와 양감 있는 팔, 자연스러우면서도 곧은 하체 등에서 이 불상의 우아하고 세련된 형태미를 볼 수 있다. 광배는 8엽의 단판연화문(單瓣蓮花文)[홑잎의 연꽃잎무늬]을 새긴 두광만 있을 뿐이고 신광은 내만한 처리로 대신하고 있다.

북면 북방불상은 동방불상과 흡사하지만 노출되었던 부분도 있어서 원모습에서 어느 정도 변형되었다. 서면 서방불상은 전면 노출되어 마멸 때문에 원모습을 상당히 잃어버렸다.

[특징]

예산 화전리 석조사면불상의 두광은 원형으로 연꽃·빗살·덩굴무늬가 차례로 새겨졌으며 그 주위에 불꽃무늬가 새겨져 있는데, 이는 백제 특유의 양식이다. 국보 제84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보물 제45호 익산 연동리 석조여래좌상과도 흡사한 양식으로, 소박하면서 박진감이 넘치는 특징을 지니고 있기에 제작 시기가 더 오래된 것으로 여겨진다.

[의의와 평가]

예산 화전리 사면석불은 백제 석불 중에서도 사면석불로는 하나밖에 없는 것이어서 매우 귀중하다. 또한 그 조각 솜씨가 아주 아름답고 뛰어나 당대의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특히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과 비교할 수 있어 백제 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매우 귀중한 작품이다. 그러나 사면의 형태는 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훼손되어 감에 따라 더욱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우리나라 최초의 석조사방불이라 할 수 있으므로, 삼국시대 백제의 불교 미술을 대표하는 석조상으로서 우리나라 조각사 연구에서, 또는 백제 미술사에서 가장 귀중한 작품의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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