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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티 절터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471
이칭/별칭 빈대절터
분야 종교/불교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초롱산길 250[광시리 산42-7]
시대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성부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재지 바라티 절터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초롱산길 250[광시리 산42-7]지도보기
성격 절터
지정 면적 약 1,000㎡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광시리 바라티마을에 있는 절터.

[개설]

바라티 절터예산군 광시면 광시리 바라티마을초롱산에 있는 시대 미상의 절터이다. 절터였음을 확인할 수 있는 석축과 기와편 등이 수습되고 있다. 2001년 발간된 『문화유적분포지도-예산군편』에서는 고려 말에서 조선 초의 절터로 규정되어 있으나 관련 자료는 확인할 수 없다. 마을 사람들에 따르면 절의 승려가 불도를 등한시하다가 절에 빈대가 많다 하여 불을 지르고 환속하였다 하여 빈대절터라고도 부른다고 한다.

[위치]

예산군 광시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2.5㎞ 정도 가면 광시리 바라티마을이 나온다. 바라티 절터는 바라티마을 300m 정도 서쪽에 있는 초롱산의 동남향 경사면 중반부에 있다. 초롱산길을 따라 50m 정도 올라가면 산 가운데로 비포장길이 있다. 300m 정도 가파른 산길을 오르면 산 가운데 평탄한 지형이 나온다. 바라티 절터는 축대만 남아 있다.

[현황]

초롱산의 동향 경사면을 깎아서 약 1,000㎡의 대지를 조성한 후 사역을 조영한 것으로 보인다. 현재 절터 내에는 건물의 기단부로 보이는 높이 2.5m, 길이 30㎝ 정도의 석축이 남아 있다. 또한 절터의 북쪽으로는 거대한 암벽이 있다. 암벽은 자연암으로 중앙 내부가 좁은 굴처럼 뚫려 있고 중단부에 ‘금사대암(金寺大岩)’이라는 명문과 작은 글자들이 쓰여 있으나 마모되어 확인이 어렵다. 석축열은 막돌 바른쌓기로 축대한 것으로 사찰이 정동남향이었음을 보여 준다. 석축은 절터의 가장 윗부분에 방형으로 조성되어 있다. 다른 주춧돌 등은 확인되지 않는다.

바라티 절터 내에는 어골문(魚骨紋) 기와가 쌓여 있는데 대부분 질흙이 거칠고 기벽이 두꺼운 것이다. 질흙이 곱고 기벽이 얇은 선문(線紋)의 기와편도 함께 수습되며, 또한 분청사기편도 약간 수습된다. 암자는 개원된 적이 있으나 다시 폐사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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