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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계이산해영정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507
한자 鵝溪李山海影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물/서화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상항방산로 319-50[방산리 산7-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2009년 01월 20일연표보기 - 아계이산해영정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7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아계이산해영정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관련 사항 시기/일시 1894년 - 아계이산해영정 모사본 제작
현 소장처 아계 이산해 종중 영당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상항방산로 319-50[방산리 산7-1]지도보기
모사본 소재지 국립중앙박물관 - 서울특별시 용산구 서빙고로 137[용산로6가 168-6]
성격 영정|초상화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의 아계 이산해 종중 영당에 있는 조선시대 문신 이산해의 영정.

[개설]

아계이산해영정은 아계 이산해 영당에 봉안되어 있는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초상화로 17세기 전반 제작된 원본으로 추정된다. 2009년 1월 2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이산해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여수(汝受), 호는 아계(鵝溪)·종남수옹(終南睡翁),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증조할아버지는 현령을 지낸 이장윤(李長潤)이며, 할아버지는 판관 이치(李穉)이고, 아버지는 내자시정(內資寺正)을 지낸 이지번(李之蕃)이다. 『토정비결(土亭秘訣)』의 저자인 작은아버지 이지함(李之菡)[1517~1578]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1561년(명종 l6) 문과에 급제하여 주요 관직을 거치며 1600년(선조 33)에는 영의정을 지냈다. 북인의 영수였으며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光國)공신에 책봉되었다. 서화(書畵)에 능하여 문장팔가(文章八家)라 일컬었다. 문집인 『아계유고(鵝溪遺稿)』가 전한다.

아계이산해영정은 기록이 없어 정확한 제작 시기를 알 수가 없다. 그러나 화상찬을 쓴 남이공의 생몰년을 보면 아계이산해영정은 남이공 생전이었던 17세기 전반에 제작되었음이 틀림없다. 원래 이산해의 영정은 원본을 포함하여 2본이 있었다. 원본은 이산해의 차종가(次宗家)[대종(大宗)에서 갈려 나온 종가]인 예산군 대술면 이구(李久)의 집에 봉안하고 나머지 1본은 충청남도 보령시 별묘(別廟)에 봉안하였다. 그러다가 보령시 별묘에 있던 것은 훼손이 심하여 소각하였다.

이후 1894년(고종 31년) 2월에 수당(修堂) 이남규(李南珪)가 예산 차종가에 보관하던 원본을 서울로 가져가 조중묵(趙重默)에게 새로이 2본을 베껴 그리게 하였다. 1896년 10월 모사본 1본은 보령 종가에 봉안하고, 원본과 모사본 1본은 예산군 대술면 한림공 종가에서 봉안하였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영정은 보령 후손이 보관하다 도난당한 것이다. 그 뒤 한림가에서 봉안하였던 원본 영정은 이건한 아계 이산해 사당에 옮겨 봉안하였고, 2009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97호로 지정되었다.

따라서 아계이산해영정은 모두 3본이 전한다. 하나는 아계 이산해 사당에 봉안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것, 그리고 마지막은 아계 이산해의 후손으로 한말 애국지사였던 수당 이남규 집안 소장본이다. 이 3본 가운데 아계 이산해 사당의 영정이 원본으로 가장 완벽하며 오래되었다.

[형태 및 구성]

아계이산해영정의 크기는 세로 176㎝, 가로105㎝이며, 비단에 채색한 전신좌상 영정이다. 모란 공작 흉배를 부착한 녹청색 칠보운문단 단령에 사모와 서대를 착용하고 교의에 앉아 있다. 짙은 갈색 선으로 얼굴 윤곽과 이목구비를 뚜렷이 그리고, 이목구비 주위에 잔 붓질을 가하였다. 채전(彩氈) 대신 화문석을 깔았고, 족좌대 위에도 화문석을 얹었다.

[특징]

아계이산해영정에 남이공(南以恭)[1565~1640]이 이산해에 대한 찬사를 적어 놓은 것으로 미루어 17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복제와 모제, 흉배의 문양 등은 17세기 초반 공신도(功臣圖)의 기본 특성을 잘 간직한 작품으로 주목되고 있다. 그러나 영정을 그린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가 없고, 오래된 관계로 일부가 훼손되어 수리된 흔적이 있다.

[의의와 평가]

아계이산해영정은 원본이 약 400년 동안 잘 보존되어 17세기 초의 공신 영정의 특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 가치가 크다. 또한 영정에 적힌 글을 통해 이산해의 일생을 자세히 알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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