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렉토리분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551
한자 興寧君墓
이칭/별칭 흥녕군 이창응의 묘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828년연표보기 - 흥녕군 묘 조성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809년 - 흥녕군 이창응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828년 - 흥녕군 이창응 사망
이장 시기/일시 1871년 - 흥녕군 묘를 남연군의 묘 근처로 이장
현 소재지 흥녕군 묘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지도보기
원소재재 흥녕군 묘 - 경기도 시흥군 번대방
성격 능묘
양식 봉분
관련 인물 흥녕군|남연군|흥선대원군|이재원
관리자 예산군청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가야산에 있는 흥선대원군의 맏형 흥녕군 이창응의 묘.

[개설]

흥녕군 묘는 남연군(南延君)의 아들이자 흥선대원군의 맏형인 흥녕군(興寧君) 이창응(李昌應)[1809~1828]의 묘이다. 원래 경기도 시흥군에 조성되었으나 1871년 덕산면 옥계리로 이장되었다. 1개의 봉분에 정경부인 조씨와 합장한 어울무덤 형식이다.

이창응은 자가 유백(裕伯)이고, 시호는 정간공(貞簡公)이다. 어머니는 우의정 민경혁(閔景爀)[1746~1815]의 딸 여흥민씨(驪興閔氏)[?~1831]이며, 부인은 참봉 임재익(林在翼)의 딸 임천조씨(林川趙氏)이다. 1822년[순조 22] 흥녕군(興寧君)에 봉작되었으며, 휘경원(徽慶園) 수원관(守園官) 등을 지냈으나, 1828년 20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사후 동생 흥완군(興完君) 이정응(李晸應)[1814~1848]의 아들 이재원(李載元)[1831~1891]을 양자로 삼았고, 1864년(고종 1) 왕대비의 하교로 영의정에 증직되었다.

[위치]

흥녕군 묘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옥계새마을회관에서 서쪽으로 약 100m 떨어진 옥계저수지 북서쪽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구릉 정상부에 남향하여 있다.

[변천]

흥녕군 묘는 본래 경기도 시흥군 번대방(樊大坊))에 있던 것을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에 안장하였다가 이후 아버지 남연군의 묘예산군 덕산면 가야산 터로 이장되면서 남연군 묘 근처인 덕산면 옥계리 가야산 무좌의 언덕으로 함께 이장하였다. 『고종실록(高宗實錄)』의 1871년(고종 8) 7월 8일 기사에 따르면 흥녕군 묘를 면례(緬禮), 즉 무덤을 옮기어 장사를 다시 지내게 할 것인데 덕산에서 행할 것이니 면례에 필요한 비용을 주게 하고 안장(安葬)하는 날 지방관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도록 하라고 하였다.

[형태]

흥녕군 묘는 1개의 봉분에 정경부인 조씨와 합장한 어울무덤 형식이다. 묘의 오른쪽에는 옥개형의 이수를 갖춘 묘비가 세워져 있다. 묘비는 1872년(고종 9) 세웠다. 묘비명은 이재원(李載元)[1831~1891]이 짓고 이재면(李載冕)[1845~1912]이 썼다. 이재원은 흥완군 이정응(李晸應)의 아들로 흥녕군에게 입양된 고종의 종형이며, 규장각직제학, 홍문관검교부제학 등을 역임하였다.

[금석문]

흥녕군 묘 비신의 앞면에 ‘유명조선국 증대광보국숭록대부 의정부영의정 영종정경 익정간 행승헌대부 흥령군 완산이공휘창응지묘 정경부인임천조씨부좌(有明朝鮮國 贈大匡輔國崇祿大夫議政府領議政領宗正卿 諡貞簡行承憲大夫興寧君完山李公諱昌應之墓 貞敬夫人林川趙氏祔左)’라고 쓰여 있다.

[현황]

흥녕군 묘는 남향사면에 넓게 자리 잡은 형태로 1개의 봉분으로 된 정경부인 조씨와 합장한 어울무덤 형태이다. 묘 앞에는 상석과 비가 있으며, 좌우에 2기의 석양(石羊)과 2기의 석주(石柱)가 세워져 있고, 정면에 석등(石燈) 1기가 있다. 봉분 정면에 세워진 석등은 매우 세밀하고 화려하게 조각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 자락에는 흥녕군 묘 이외에도 남연군 묘 등 왕족의 능묘가 여럿 있다. 조선 후기 왕실과 덕산지역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