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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597
한자 金相俊金顯厦旌閭
이칭/별칭 김상준·김현하 부자 효자 정려,김상준·김현하 양세 정려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당곡리 2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92년연표보기 - 김상준·김현하 정려 명정
현 소재지 김상준·김현하 부자 정려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당곡리 2 지도보기
성격 정려
양식 맞배지붕|굴도리식
정면 칸수 2칸
측면 칸수 1칸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당곡리에 있는 김상준·김현하 부자의 효자 정려.

[개설]

김상준·김현하 정려는 김해김씨 김상준(金相俊)김현하(金顯厦) 부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1892년(고종 29) 세워졌다. 김상준은 어머니가 병이 들자 의원을 찾아 약을 지어 오다가 날이 저물어 길을 잃었는데,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인도해 주었다고 한다. 아들 김현하도 부모의 상을 당하자 여막을 짓고 6년을 하루같이 채소와 물만 먹으며 지냈다고 한다. 1892년 덕산 유생 강인세(姜仁世) 등이 왕의 행행(幸行)시에 김상준·김현하부자에 대한 상소를 올려 명정을 받게 되었다.

[위치]

예산군 덕산면 소재지에서 북서쪽으로 지방도609호선을 따라 1.5㎞ 들어가서 도로 왼쪽에 있는 하평교를 건너 700m 정도 가면 서쪽에 당곡리가 나온다. 김상준·김현하 정려당곡리 안쪽에 길게 뻗은 구릉의 중단부에 동향하여 있다.

[변천]

김상준·김현하 정려의 건립 사실은 정려 내부에 걸려 있는 예조입판 현판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덕산 유생 강인세등이 왕의 행행시에 상소를 올려 1892년 8월 20일 명정을 받게 되었으며 후손들이 힘을 모아 정려가 건립되었음이 기록되어 있다.

[형태]

김상준·김현하 정려는 정면 2칸, 측면 1칸에 맞배지붕을 하고 있다. 겹처마에 굴도리식 가구이다. 정려는 시멘트 기단 위에 가공하지 않은 자연 주춧돌을 놓고 위에 원기둥을 올리고 있다. 4면에는 홍살이 둘러 있고, 정려 좌우 박공 밑에는 방풍판이 설치되어 있다. 내부에는 1892년 8월 내려진 ‘효자 학생 김현하지문(孝子學生金顯廈之門)’, ‘효자 학생 김상준지문(孝子學生金相俊之門)’이라 적힌 현판이 각각 걸려 있다. 명정 현판 위쪽에는 1893년 작성한 예조입안이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현황]

김상준·김현하 정려는 철책으로 보호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정려의 북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야산의 남향 구릉에 효자터라 불리는 곳이 있는데, 김상준·김현하 부자를 비롯하여 조극선까지 세 명의 효자가 난 곳으로 전한다. 현재 밭으로 개간된 터는 야곡 조극선의 생가가 있던 자리라고 전하며, 현재는 정문동(旌門洞)이라고 새긴 돌이 세워져 있다.

[의의와 평가]

김상준·김현하 정려는 덕산 지역 유생들이 왕에게 직접 상소를 올린 적극적인 활동의 자료로 의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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