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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627
한자 朴根妻玄風郭氏旌閭
이칭/별칭 현풍곽씨 열녀비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은사리 3-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30년연표보기 - 박근 처 현풍곽씨 정려 건립
건립 시기/일시 1670년연표보기 - 박근 처 현풍곽씨 정려비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854년 - 박근 처 현풍곽씨 정려비 중수
현 소재지 박근 처 현풍곽씨 정려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은사리 3-1 지도보기
성격 정려
관련 인물 현풍곽씨
정면 칸수 겹처마 팔작지붕
측면 칸수 1칸
소유자 1칸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은사리에 있는 고려시대 열녀 현풍곽씨의 정려.

[개설]

박근 처 현풍곽씨 정려는 고려시대 박근(朴根)의 아내 현풍곽씨(玄風郭氏)의 열행을 알리고자 조선 세종 때 세워진 정려이다. 『세종실록』 1431년(세종 13) 10월 28일 예조에서 남편 박근이 죽은 후에도 시부모님을 모신 아내 곽씨에게 포상 여부를 확인하여 복호(復戶)하도록 보고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정려비에는 1430년(세종 12) 명정(銘旌)되었다고 기록되어 있어 차이를 보인다.

[위치]

예산군 광시면 소재지에서 북쪽으로 2㎞를 가면 신대 제1교에 이른다. 박근 처 현풍곽씨 정려는 신대 제1교를 지나 서쪽으로 1㎞ 정도 들어간 오리골마을 어귀에 있다.

[변천]

현풍곽씨는 기록에 따르면 세종 대인 1430년[혹은 1431년]에 명정을 받았다. 정려각 내부의 정려비는 1670년[현종 11] 후손 박독(朴禿)[1609~?]이 대흥 오리동 옛터 조산에 세웠다. 이후 1854년 후손 박겸(朴兼)이 정려비를 중수하였다.

[형태]

정려는 정면 1칸, 측면 1칸의 도리식 건물로 겹처마에 팔작지붕이다. 시멘트 기단에 화강암 주춧돌을 세우고 원기둥을 올렸으며 하방 아래는 고맥이를 하였다. 비석은 방형 대좌 위에 비신을 올려 대좌 상단에 복련을 조각하였다. 4면에는 안상이 새겨져 있다. 정려 내부에는 ‘열녀현풍곽씨지비(烈女玄風郭氏之碑)’라고 새겨진 열녀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박근 처 현풍곽씨 정려는 곽씨가 고려시대의 열녀라는 점과 조선 초기의 복호와 명정의 사례로 중요한 유적이다. 또한 은사리는 울산박씨의 오랜 세거지로 남편 박근은 울산박씨일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1.05.25 내용 수정 현풍 곽씨의 남편 박근의 본관을 밀양 박씨에서 울산 박씨로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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