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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630
한자 憲宗胎封胎室
이칭/별칭 헌종대왕 태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최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847년연표보기 - 헌종 태봉 태실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27년 - 헌종 태봉 태실의 태를 서삼릉으로 이안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9년연표보기 - 헌종 태봉 태실 석물 복원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15년 - 헌종 태봉 태실비 옥계저수지 수중 탐사로 일부 발굴
현 소재지 헌종 태봉 태실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지도보기
성격 태실
양식 귀부대좌[석물]|항아리 형식[태실]|화문양각|팔각옥개석
관련 인물 헌종|이지연|김도희
크기(높이,길이,둘레) 350㎝[태실 기단 넓이]|110㎝[태실 옥개석 높이]|54㎝[귀부대좌 비신공 가로]|26㎝[귀부대좌 비신공 세로]
관리자 예산군청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옥계리 명월봉에 있는 조선 제24대 왕 헌종의 태실과 석물.

[개설]

헌종 태봉 태실은 조선 24대 왕 헌종(憲宗)[1827~1849]의 태를 묻은 곳으로 1847년(헌종 13) 「헌종태봉도(憲宗胎封圖)」에 기록이 상세히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에 파괴되어 대부분 훼손되었으나 현재는 예산군에 의해 흩어졌던 석물을 모아 복원되었다.

헌종은 휘(諱)가 이환(李奐), 자는 문응(文應), 호는 원헌(元軒)이다. 익종의 아들로 어머니는 풍양조씨(豊壤趙氏) 조만영(趙萬永)의 딸 신정왕후(神貞王后)[1808~1890]이다. 1834년(순조 34) 순조가 죽자 8세의 나이로 즉위하여 순원왕후(純元王后)[1789~1857]가 수렴청정하였다. 헌종 재위 기간 동안 수재 발생 등 민생고가 가시지 않는 등 민심이 동요하였고, 천주교 탄압 정책을 추진하였다. 헌종은 『열성지장(列聖誌狀)』, 『동국사략(東國史略)』, 『동국문헌비고(東國文獻備考)』 등을 찬수하게 하고, 각 도에 제방을 수축하게 하는 등의 정책을 폈다.

[건립 경위]

1827년(순조 27) 헌종이 태어났을 때 풍수지리적으로 명산을 찾아 옥계리 명월봉에 태를 묻었다. 『순조실록(純祖實錄)』11월 12일 기록에는 “안태사(安胎使) 이지연(李止淵)이 이달 11일 태를 모시고, 덕산현 가야산 밑 명월봉(明月峯) 태봉소(胎封所)에 가서 그날 신시에 태를 봉안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1847년 석물이 조성되고 태실이 완성되었다. 단장한 뒤의 모습은 「헌종태봉도」에 상세히 남아 있다.

[위치]

헌종 태봉 태실예산군 덕산면 옥계리옥계저수지에서 북동쪽으로 저수지와 접해 있는 가야산 자락 명월봉 봉우리 상단부에 있다.

[형태]

남향의 귀부대좌 등에 가로 54㎝, 세로 26㎝의 비신공이 남아 있어 비석을 세웠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귀부대좌의 뒤쪽으로는 총 넓이 350㎝로 15개의 화강석 별석으로 된 원형의 태실 기단이 있고, 위에 항아리 형식의 태실이 올려져 있다. 태실도 세밀한 조각을 구사하고 있는데 상단부와 하단부에는 테를 돌리듯이 둥그런 원을 여러 개 겹쳐서 돌리고 있으며, 허리 부분의 4곳에는 불꽃 형태의 화문을 양각하고 있다. 1매의 화강암으로 만든 110㎝ 높이의 태실 옥개석은 팔각을 이룬 종 형태이고 상단부에는 16개의 잘 다듬어진 보주 형태의 조각이 올려져 있다. 2015년 인근 저수지에서 발견된 파손된 태실비 하단에 ‘태실(胎室)’이라는 글씨가 선명히 새겨져 있다.

[현황]

헌종 태봉 태실은 일제강점기인 1927년 왕의 태 53기를 서삼릉으로 이안할 때 파괴되어 훼손된 후 방치되다가 2009년 예산군에 의해 일부가 복원되어 현재 기단, 태실, 귀부석만 남아 있다. 예산군은 2015년 9월 옥계저수지 수중 탐사 결과 도굴꾼에 의해 버려졌다는 태실비 하단 일부를 발견하였다. 2017년 7월에는 수중 탐사를 통하여 옥계저수지에서 사방석을 발견하였다.

[의의와 평가]

헌종 태봉 태실은 유적으로 인해 덕산면의 승격이 이루어진 점 등 지역의 역사와 변천을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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