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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632
한자 月松里翁主胎室-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터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월송리 태봉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753년 - 월송리 옹주 태실 건립
소재지 옹주 태실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의좋은형제길 33[동서리 106-1]지도보기
성격 태실 터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월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옹주 태실이 있던 자리.

[개설]

월송리 옹주 태실 터는 조선 영조 대에 세워진 옹주 태실의 터로서 현재 터만 남아 있다. 태실과 1753년(영조 29) 세워진 태실비는 현재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 동헌 뒤쪽으로 옮겨져 있다. 태실비에 따르면 화령옹주(和寧翁主)와 화길옹주(和吉翁主) 중 하나의 태실로 추정된다.

[위치]

예산군 광시면 월송리 작은텃골과 큰텃골 사이에 높게 솟아 있는 봉우리가 옹주 태실이 있던 곳이다.

[현황]

원래 월송리 옹주 태실이 있던 곳은 흔적만 남아 있고 태실과 태실비는 대흥면사무소 옆에 있는 동헌 뒤쪽에 대원군 척화비와 나란히 세워져 있다. 옹주 태실은 원통형의 돌 중앙에 구멍이 있고 뚜껑으로 덮을 수 있다. 높이 60㎝, 원주 91㎝로 화강암으로 만들었고, 가운데 구멍 깊이는 33㎝, 원주는 43㎝이다. 뚜껑은 원주가 85㎝로 꼭지 부분은 복발처럼 다듬어 장식해 놓았다.

태실의 앞에는 1753년(영조 29) 세워진 태실비가 세워져 있다. 태실비는 방형의 화강암 기단 위에 비신을 올리고 비신의 상단부에 이수(螭首)[비석의 몸돌 위에 얹은 덮개돌로 이무기나 용의 모습을 새겨 넣은 모양]를 올렸으며 이수의 상부는 복발형 조각이 있다. 전체 높이 188㎝, 폭 50.5㎝, 두께 23.5㎝, 높이 102㎝로, 비신의 앞면에는 ‘계유십팔년삼월 초이월술시생아지씨태실[癸酉十八年三月初二月戊時生翁主阿只氏胎室]’, 뒷면에는 ‘건륭십팔년오월십삼일립[乾隆十八年五月十三日立]’이라고 새겨져 있다.

비석이 반으로 부러진 것을 시멘트로 붙인 흔적이 있다. 태실이 어떤 옹주의 것인지는 기록을 찾기 어려우나, 비석의 건립 시기로 보아 영조의 일곱 옹주들 가운데 화령옹주와 화길옹주 중 한 명으로 추정된다.

[의의와 평가]

태실은 전국의 길지(吉地)를 골라 조성하였다. 월송리 옹주 태실은 누구의 것인지 비교적 추측할 수 있어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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