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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637
한자 小木匠
영어공식명칭 Small crafts carpenter
이칭/별칭 창호장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예덕로 36-2[읍내리 290]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류용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6년 02월 27일연표보기 - 소목장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소목장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재지정
소목장 거주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예덕로 36-2[읍내리 290]지도보기
문화재 지정번호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거주하고 있는 전통 목조 건축물에서 나무로 창호 등을 제작하는 기능을 보유한 장인.

[개설]

나무로 집짓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을 목수 또는 목장(木匠)이라 한다. 그중 문짝, 반자, 난간 등과 같은 집의 부분을 구성하는 시설을 제작하는 기술을 가진 사람을 소목장(小木匠)이라 한다. 소목장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제작 기능을 보호 전수하고 있다.

예산군 덕산면 읍내리의 조찬형 소목장은 1956년부터 1964년까지 김건우로부터 창호 제작 기술을 전수받은 이래 지금까지 창호 제작 일을 하고 있다. 조찬형 소목장은 1996년 2월 27일 충청남도 무형문화재 제1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무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유래와 변천]

고대에는 목수를 재인(梓人)·재장(梓匠)·윤여(輪輿)라 했는데, 소목장이라는 명칭은 고려 때부터 나타나며 『경국대전』에서는 일괄하여 목장(木匠)이라 하기도 하였다.

목장 중 소목에 대해서는 『고려사』에 나오고 조선 초 세조 때의 기록에도 보이는 것으로 보아 대목과는 구분하였던 것 같다. 조선 초기까지는 목가구가 주로 왕실과 상류계층에서 사용되고 제작되었으며 조선 후기부터는 민간에 널리 보급되었다. 왕실이나 상류계층의 가구는 옻칠과 밀다회(密陀繪)·자개·대모 등 좋은 치레방법이 구사되었지만 서민사회의 가구는 제약이 많았다.

[소목장 조찬형]

조찬형은 16세에 집안이 기울면서 덕산의 친적집이었던 이강원의 공방에서 일을 하면서 목공예와 접하게 되었다. 그 후 3년 뒤에는 사찰에서 전통 창호 연구를 시작했고 1959년부터는 6년간 인천에서 김우건에게 전통 창호를 배운 후 1964년 예산군 덕산면에서 ‘일신공예사’를 설립하고 본격적으로 전통 창호 제작을 시작하였다.

1980년대 국가무형문화재 대목장 신응수와 충청북도 단양의 구인사 대조사전 창호 작업을 하면서 나무 고르기, 말리기, 짝 맞추기 등 전통 창호 기술을 익히며 정리하였다. 구인사 대조사전은 목조 건물로는 국내 최대 규모로 높이 27m의 3층 다포집인데, 창호는 모두 300년 이상된 춘양목만을 사용하여 완성하였다.

조찬형은 창호를 만들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목재의 선택이라 한다. 춘양목이 창살 모양을 표현하기에 가장 적합하다고 하는데, 세월이 지나도 나무의 결을 그대로 유지할 뿐만 아니라 조직이 치밀하여 아름다운 무늬결과 섬세한 조각이 가능하다. 춘양목 외에도 고옥에서 나온 고재(古材)도 중요한 재료다.

조찬형이 만드는 창살의 종류는 빗살, 완자, 세살, 연꽃빗살, 국화꽃빗살 등 다양한 문살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꽃살창호가 최고 장기이다. 조찬형은 창호를 제작할 때 나이테가 정면으로 보이게 재단을 해 다른 마감칠을 하지 않고 목재의 원색과 무늬결만으로 자연스럽다. 조찬형은 다양한 형태의 창호를 못이나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고 아귀를 꿰맞춰서 제작하는 전통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꿰맞춤은 정확하게 나무의 특성을 알고 있어야만이 가능하다. 대개 조찬형이 살창 한 짝을 만드는 데는 3~4일 정도 소요되며 꽃살창호의 경우 한 짝을 완성하는데 20여 일 시간이 걸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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