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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728
한자 李吉儒
이칭/별칭 사적(士迪)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옥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14년연표보기 - 이길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44년 - 이길유 식년시 무과 장원
활동 시기/일시 1747년 - 이길유 조선통신사 군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59년 - 이길유 영종방어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62년 - 이길유 봉산군수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63년 - 이길유 전라좌수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70년 - 이길유 경상좌병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71년 - 이길유 경상좌병사 사직
몰년 시기/일시 1783년연표보기 - 이길유 사망
출생지 이길유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옥전리 지도보기
묘소|단소 이길유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옥전리 지도보기
성격 무신
성별
본관 신평(新平)
대표 관직 병마절도사

[정의]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무신.

[개설]

이길유(李吉儒)[1714~1783]는 조선 후기의 무신으로, 방어사·수군절도사 등 요직을 두루 거쳐 벼슬이 병마절도사에 이르렀다.

[가계]

이길유의 본관은 신평(新平)이며, 자는 사적(士迪)이다. 아버지는 이조참판을 지낸 이국형(李國馨)이고, 어머니는 파평윤씨(坡平尹氏)이다.

[활동 사항]

이길유는 1714년(숙종 40) 지금의 예산군 봉산면 옥전리에서 태어났다. 1737년(영조 13)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였고, 1744년 식년시 무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관직에 나갔다. 1747년 일본으로 가는 조선 통신사의 무관으로 선발되어 떠났다가 이듬해인 1748년 귀국하여 총부도사로 승진하였다. 1759년 영종방어사로 부임하였고, 1762년 봉산군수를 거쳐 1763년에는 수군절도사로서 전라좌수영 수군을 지휘하였다. 1770년 병마절도사에 올라 경상좌병사로 부임하여 왜구의 침범을 대비해 병력을 늘리고 성곽 등의 보수에 힘을 쏟았다.

이길유는 1771년 한유(韓鍮)가 사도세자의 장인인 홍봉한(洪鳳漢)을 참수하라는 상소를 올리고 심의지(沈儀之)가 동조한 사건에 조카인 이도찬(李道燦)이 연루되면서 경상좌병사를 사임하고 고향인 예산으로 낙향하였다. 이후 영조가 여러 차례 관직을 내리며 한양으로 올라올 것을 권하였으나 끝내 사양하였다. 말년에 조용히 은거 생활을 하다 1783년(정조 7) 사망하였다.

[묘소]

이길유의 묘소는 예산군 봉산면 옥전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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