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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984
한자 勞動爭議
이칭/별칭 노동운동
분야 정치·경제·사회/사회·복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문경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노동쟁의
관련 인물/단체 예산 인쇄소, 예산 미곡검사소, 충남제사주식회사

[정의]

일제강점기 1920년대부터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전개된 노동 단체 결성과 노동자들의 동맹 파업.

[개설]

1920년대 일제의 적극적인 조선 공업화 정책에 따라 일본의 대기업들이 한국에 진출함에 따라 국내 경제는 일본 기업에 예속되어 갔다.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인 기업가들의 횡포가 늘어나자 예산 지역의 노동자들은 1926년에 ‘대흥익명조합’을 조직하여 노동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후에도 예산 지역의 제사업, 양잠업 종사자들의 노동쟁의가 자주 발생했다.

[역사적 배경]

1920년대에 들어서 「회사령」이 폐지되면서 미쓰이, 미쓰비시와 같은 일본의 독점 재벌이 한국으로 진출하여 경제력을 장악하였다. 이 기업들은 1929년의 대공황으로 경제가 위축됨에 따라 노동자들을 더욱 가혹하게 착취하였다. 이에 따라 예산 지역의 노동자들은 노동단체를 결성하고, 노동쟁의를 조직적으로 전개하였다. 특히, 1930년대의 충남제사주식회사에서 발생한 두 차례의 노동쟁의는 친일 자본가들의 횡포와 열악한 노동환경에 항거하는 노동쟁의의 성격을 잘 보여 주는 사건이다.

[경과]

1930년 5월 3일, 예산 인쇄소 노동자들이 노동시간 단축과 임금 체불을 이유로 파업하여 회사 측과 대립하였다. 또한, 1933년 1월 5일에는 예산 미곡검사소에서 400여 명의 노동자들이 부당하게 까다로운 미곡 검사를 이유로 파업하여 10일 동안 휴업하였다. 1933년 10월 28일에는 충남제사주식회사에서 200여 명의 직공들이 부실한 급식과 임금 체불에 항의하여 단식투쟁을 벌였다. 노동쟁의가 일어나자 회사는 무기 휴업을 선언하였으며, 예산경찰서가 개입해 이를 조사하였다. 이어서 1935년 8월 29일 충남제사주식회사에서 직공들이 임금인상, 임금 체불 청산, 노동시간 단축 등을 주장하며 파업을 하였는데, 대전군시제사(大田郡是製絲), 부산 삼화고무공장의 파업과 연대하여 동맹파업 형태로 진행되었다.

[결과]

예산 지역의 파업은 대부분 요구 조건을 관철시키지 못하고 친일화 된 기업인들과 조선총독부 산하의 예산경찰서가 결탁하여 탄압함으로써 해산되었다.

[의의와 평가]

예산 지역의 노동쟁의는 일본의 식민지배라는 역사적 흐름과 맞물려 진행 되었다. 충남제사주식회사 파업의 경우 경영 악화로 일본 기업 미쓰이의 재정 지원을 받게 되면서 노동쟁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일본 기업의 경영권 장악과 기업가의 친일화 현상이 노동쟁의의 계기를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또한, 일찍이 면공업 공장이 들어섰던 예산 지역은 여성 노동자가 많았고, 장시간 노동과 낮은 임금에 시달린 여공들이 파업을 주도했다는 점에서 여성 노동운동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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