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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042
한자 牧隱影堂
이칭/별칭 이색 선생 영당,목은사당,누산영당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다락로 103-12[이리 410-2]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소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600년연표보기 - 목은영당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993년 - 목은영당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2004년 - 목은영당 봉화공 파종회에서 담장 개축 및 중수
현 소재지 목은영당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다락로 103-12[이리 410-2]지도보기
성격 사당
양식 겹처마 맞배지붕|납도리식
관련 인물 이색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이리에 있는 고려 후기 충신 이색의 영정을 모신 사당.

[개설]

목은영당은 고려 말 충신이자 성리학자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초상화를 모시고 있는 사당이다. 이색은 본관이 한산, 자는 영숙(穎叔), 호는 목은이다.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야은(冶隱) 길재(吉再)와 함께 고려 삼은(三隱) 중 한 사람이다. 아버지는 찬성사 이곡(李穀)이며 이제현(李齊賢)의 문인이다. 이색은 14세 때 성균시에 합격하고, 1367년(공민왕 16) 성균관대사성이 되었으며, 학문과 불교에 대한 조예가 깊고 정치에도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다.

[건립 경위]

이색의 영정은 고려시대 조정에 들어갈 때 입는 오사관홍포서대의 초상과 집에서 기거할 입는 초립의 초상 2종이 전래되어 왔으나, 임진왜란 때 1종이 실전되어 홍포서대(紅布犀帶)의 영정만 전하고 있다. 1520년(중종 15) 이색의 5대손 좌의정 이유청(李惟淸)[1459~1531]은 영정 2본을 모사하게 하여 하나는 본인이 보관하고, 다른 하나는 현손 한원군(韓原君) 이장윤(李長潤)[1455~1528]에게 봉안하도록 하였다. 이후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7대손 아주군(鵝洲君) 이식(李埴)은 하나 남은 영정을 덕산(德山)으로 옮겨 와 모셨으며, 1600년 8대손 한양군(韓陽君) 이흥준(李興畯)에 의해 덕산의 누산2리[현 삽교면 이리]에 영당을 건립하고 영정을 봉안하여 누산 영당(樓山影堂)이라 하였다.

1654년(효종 5) 다시 2본을 모사하여 옛 영정은 한산의 문헌서원에 봉안하고 모사한 2본 중 하나를 덕산 누산영당에 모신 후 춘추로 향사를 지냈다고 한다. 이후 영당은 수백 년 동안 여러 차례 중수하였으나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파손되고 훼손되어 1993년 한 차례 중수하였다. 2004년 봉화공파종회에서 담장을 개축하고 영당 주변 전체를 새롭게 중수하였다.

[위치]

예산군 삽교읍 이리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길을 따라 2㎞ 가다 보면 안다락미마을이 나온다. 목은영당은 안다락미마을 방앗간 뒤편에 남향하여 있다.

[형태]

목은영당 앞에는 솟을삼문이 세워져 있으며, 중앙 상단에 문충문(文忠門)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문충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영당 건물이 보인다. 영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건물로 시멘트 기단 위에 원형의 주춧돌을 놓고 위에 원기둥을 세운 형태이다. 지붕은 겹처마에 맞배지붕 양식이며, 공포는 납도리식 가구이다. 전면의 1칸을 안으로 들여 툇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어칸의 상부에는 ‘목은선생영당(牧隱先生影堂)’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창방 위에는 각 칸마다 3개씩 소로를 놓고 위에 첨차를 조각하여 달았다. 문은 3칸으로 모두 4분합문을 달고 있으며 영당의 좌우 박공 밑에는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2018년 현재 건물은 1993년과 2004년 중수한 것으로 200여 평[약 661㎡]의 대지에 걸쳐 돌담이 둘러져 있고 영당 바로 앞에는 도지정 향나무 2그루가 있다.

[현황]

「이색 초상-누산영당본(李穡肖像-樓山影堂本)」은 1995년 12월 11일 보물 제1215-3호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이색의 초상화로 원본은 아니지만 당시 일류 화가들이 모사하였고, 고려 말 관복의 형태를 충실하게 표현하는 등 회화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고 할 수 있다. 본래 초상화에는 관복 차림과 평상복 차림의 두 종류가 있었다고 하나, 현재는 관복 차림만 전하고 있다. 관복 차림의 영정 또한 원본은 전하지 않으며, 원본을 보고 옮겨 그린 영정 4본 5점이 전한다. 1654년 허의와 김명국이 옮겨 그렸다고 전하는 누산영당본은 가로 85.2㎝, 세로 143㎝이다. 관리들이 쓰는 사모를 쓰고 왼쪽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다. 사모에는 회색줄을 넣어 입체감을 표현하였으며, 얼굴에는 옅게 붉은 기운을 넣어 당시의 화법을 보여 주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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