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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055
한자 聖潔敎會
분야 종교/기독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명진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는 개신교의 한 교단.

[개설]

충청남도 예산군에는 성결교회가 1923년 예산군 삽교읍역리성결교회로부터 뿌리를 내렸다. 현재 예산군 내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등 3개 교단 소속 성결교회가 있다.

[변천]

한국의 성결교회는 1907년 5월, 김상준과 정빈이 일본 동경에 있는 동양선교회의 성서학원을 졸업하고 경성[서울 ] 종로 염곡에 ‘조선 야소교 동양선교회 복음전도관’을 설립하고 사중복음을 전파한 데에 그 연원이 있다. 1911년 3월에는 경성성서학원[서울신학대학교 전신]이 설립되었다. 1943년 12월, 조선총독부령으로 성결교회의 사중복음이 일본국체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교단이 강제 해산되었다. 8.15해방이 되자, 1945년 11월에 교단재건준비위원회를 조직하였다. 1946년 4월, 제1회 기독교조선성결교회 총회가 개최되었다. 그리고 1949년 4월에 교단 명칭을 기독교대한성결교회로 변경하였다. 1961년 교회일치운동 동참에 대한 의견 대립으로 예수교대한성결교회가 독립하였다.

성결교회 교단은 현재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등 3개의 교단으로 나뉘어 있다.

한편, 충청남도 예산군성결교회는 1923년 2월에 한춘경·김기환·이계희 3인이 삽교읍 역리 316번지 초가에서 예배를 하면서 출발하였다. 바로 역리성결교회가 시작된 것이다. 1928년에는 총회본부 개척 지원금 500환으로 대지를 매입하여 6칸짜리 초가 예배당을 건립하였다. 그 후 발전하던 역리성결교회는 1943년 일제의 탄압으로 강제 폐쇄되었다. 1945년 9월 교회를 재건하고 위치를 삽교읍으로 옮겼다. 하지만 교인 대부분이 역리 주변에 살고 있어서 원거리 이동이 불편하였기 때문에 1947년 11월에 다시 역리성결교회를 재건하였다.

현재 예산군 관내에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등 3개 교단 소속 교회가 있다.

[현황]

예산군에 있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교단 가운데 8.15해방 이전에 역사가 시작된 대표적인 교회는 다음과 같다. 1923년부터의 역리성결교회[삽교읍 역리], 1932년부터의 구만리성결교회[고덕면 구만리], 1932년의 예산성결교회[예산읍 예산리], 1934년의 신례원성결교회[예산읍 신례원리] 등이다. 이상의 교회를 포함하여 전체 교회는 예산읍에 6개, 신양면에 2개, 대술면에 1개, 광시면에 2개, 삽교읍에 6개, 고덕면에 3개, 덕산면에 2개, 응봉면에 1개, 신암면에 5개 등이 있다.

대한기독교나사렛성결회 소속 교회는 대성교회[신암면 오산리], 예산교회[예산읍 창소리], 예산산성교회[예산읍 산성리], 예산영광교회[대흥면 하탄방리] 등이 있다.

예수교대한성결교회 총회 소속 교회는 1945년에 세워진 삽교교회[삽교읍], 그리고 중심교회[삽교읍 두리], 신암교회[신암면 종경리], 두곡교회[신암면 두곡리], 동신교회[신암면 신택리]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예산군 관내에 있는 성결교회는 일제 강점기인 1923년부터 설립되기 시작하여 예산 지역에 성결교회의 신앙을 전파하면서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하여 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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