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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155
한자 簡易學校
분야 문화·교육/교육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노재준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남도 예산군에 있었던 비정규 교육 기관.

[개설]

간이학교(簡易學校)는 일제 강점기 학교에 취학하지 못한 한국인 아이들에게 초등 교과과정을 2년 동안에 마치도록 한, 보통학교 부설의 속성 초등학교였다. 수업은 대체로 일본어 교육을 목적으로 하였다. 일제는 1920년대 문화 정치를 실시하면서 1개 면에 1개 초등학교를 설립한다는 목표를 앞세웠으나 실현하지 못했다. 1930년대 들어 교육에 대한 수요가 높아지자 조선총독부는 보통학교와는 다른, 정규 학제와 관계없는 간이학교를 설립하였다. 이에 따라 1930년대 예산군에도 많은 간이학교들이 설립되었다. 간이학교들은 해방 후 정식 학교로 승격되었다.

[변천]

일제는 농촌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교육 시설 부족 문제를 해결한다는 미명하에 1934년 1월 학비(學秘) 제2호로 「간이초등교육기관설치에 관한 건」을 발표하였다. 일본어를 보급시키고 직업에 대한 관념을 깊게 하는 동시에 일본 정신을 불어넣으려는 의도에서 설립되었다.

1930년대에 한국인의 교육열이 크게 고조된 반면 교육시설은 부족하여, 적은 예산으로 초등교육을 보급하고자 간이학교제를 실시하게 된 것이 설립 배경이었다. 또한, 1930년대는 일제의 산미 증산 계획의 실패와 세계 경제공황 등의 여파로 인해 계속적인 수탈을 당한 농촌 경제는 파탄에 이르게 되었다. 따라서 소작쟁의 등 농민 저항운동이 격화되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1932년부터 농촌진흥 정책을 추진하였다. 농촌진흥 정책의 일환으로 간이학교를 설립하여 농업교육을 보급시키고 대륙 침략을 위한 동원체제를 만들어 농촌사회의 경제적 수탈을 강화하고자 한 것이다.

간이학교는 공립보통학교에 부설되어 있었으나 독립된 교육기관으로 인정하여, 자체의 교육과정으로 초등교육을 완성시키도록 하였다. 대부분 학교의 운영은 관비로 충당되었으나 개량서당을 간이학교로 개편하고, 서당 설립자로부터 토지를 기증받아 농촌 실습지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1934년에 384개의 간이학교를 설립하고 학생 1만 7669명[남 1만 6393명, 여 1,276명]을 수용, 매년 증설되었으며, 1936년에는 880개로 확장되어 한 군에 4개교 정도로 설치되었다. 그러나 국민의 호응이 적을 뿐 아니라 1930년대 후반부터는 민족 말살 정책이 적극화되어 더 이상 설립이 추진되지 않았으며 8.15해방 전까지 모두 초등학교로 전환되거나 폐교되었다.

일제강점기 예산군에는 각 면 공립학교의 부설로 장신간이학교[1934년 4월 2일], 수덕간이학교[1934년 4월 4일], 간양간이학교[1935년 4월 30일], 대률간이학교[1936년 7월 8일], 고덕간이학교[1937년 6월 25일], 응봉심상소학교부설간이학교[1940년 11월 30일], 산성리간이학교가 설립되었다. 이런 간이학교들은 해방 직후 곧바로 정식 학교로 승격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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