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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334
한자 長福里長福-堂-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유병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중단 시기/일시 2005년 - 장복리 장복실마을 부처당이제 중단
의례 장소 부처당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원장복마을 지도보기
성격 민간 의례|마을 공동 의례
의례 시기/일시 매년 음력 2월 초하룻날
신당/신체 부처당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장복실마을에서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룻날에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지냈던 마을 제사.

[개설]

예산군 대술면 장복리 장복실마을 주민들은 해마다 음력 2월 초하룻날 저녁에 돌부처를 모셔 놓은 부처당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장복리 장복실마을 부처당이제를 공동으로 지내어 왔다. 장복리 장복실마을 부처당이제는 2005년 무렵에 중단되었다.

[연원 및 변천]

부처당과 부처당이제의 유래에 대해서는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부처당 바로 아래에 고려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장복리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6호]이 있어 고려시대부터 이곳에 작은 암자나 사찰이 있었을 가능성이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이와 관련해서 홍건적의 난 당시 고려를 침입한 홍건적이 말을 타고 이곳을 지나갈 때, 이 석탑 앞에서 말발굽이 땅에 붙어 움직이지 않자 부처당에 있는 석불의 목을 칼로 자르니 말발굽이 떨어졌다는 등의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 부처당과 부처당이제의 역사가 오래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임진왜란과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도 홍건적이 왜군과 일본군으로 바뀔 뿐이지 이와 비슷한 줄거리의 전설이 전하여 오고 있다.

장복리 장복실마을 부처당이제의 영험함과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몇 가지 전하여 온다. 부처당이제를 지내러 시루를 지고 산에 올라가다가 부정한 것을 봤는지 잘못되어 눈이 멀은 사람이 있다. 부처당 주변의 나무를 베다 쓰면 장애를 생기거나 심하게 병을 앓았다. 일제강점기에 부처당 앞에 있던 느티나무 일곱 그루를 마을에서 숯을 굽는 사람에게 팔았는데, 숯쟁이가 느티나무를 베어다가 숯을 굽고는 팔지도 못하고 죽었다.

[신당/신체의 형태]

부처당은 장복2리 원장복마을의 ‘부처 모랭이’이라 불리는 산기슭에 있다. 당집은 비탈에 자연석으로 높게 축대를 쌓아 조성한 대지에 정면 세 칸, 측면 한 칸 규모의 목조 기와 건물이다. 현재의 부처당은 1980년대에 전면적으로 보수한 것으로, 옛 건물의 뼈대는 그대로 두고 벽체 등을 일부 개수하고 지붕을 초가에서 기와로 바꿨다. 당집 내부는 전체가 트여 있으며, 가운데에 제단이 있다. 제단은 2단으로, 윗단에는 석불을 모셔 놓았고, 아랫단은 제물을 차리는 상석이다. 문은 설치하지 않아 밖에서도 석불을 볼 수 있다.

당집에는 미륵으로 여겨지는 어른 키 높이의 석불 두 기와 이 석불의 자녀로 여겨지는 일곱 기의 조그만 석불이 있었으나 1990년대 중반 즈음에 모두 도난당하였고, 현재는 사람의 머리와 몸통 형상을 한 약 60㎝ 높이의 자연석 하나를 석불로 모셔 놓고 있다. 석불 옆에는 이 석불의 자녀로 짐작되는 주먹만 한 막돌을 대여섯 개 정도 쌓아 놓았다.

[절차]

장복리 장복실마을 부처당이제는 음력 2월 초하룻날 저녁에 지냈다. 2005년 무렵 제를 중단하기 직전까지는 마을에 살던 만신(萬神)이 제를 주관했다. 만신이 마을 주민들보다 앞서 부처당에 올라가 제물을 차려 놓고 경을 읽고 있으면, 주민들이 각자 별도로 제물을 준비해서 부처당에 올라가 치성을 드리는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부처당이제에 올리는 제물은 떡[백무리], 과일, 맑은 물, 불백이쌀[불밝이쌀] 등이다. 만신의 축원을 받고 나면 주민들은 각자 자신이 준비해 온 제물을 차려 놓고 식구들의 소지를 올리며 정성을 드렸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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