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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보타령」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400
이칭/별칭 곰보가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조선/조선,근대/근대
집필자 이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97년 - 「곰보타령」 예산문화원에서 노래 가사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97년 - 「곰보타령」 『예산문화』 제26집에 수록
채록지 예산군 - 충청남도 예산군
성격 휘모리잡가|유희요
토리 경기좌창
박자 구조 볶는타령장단

[정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불리는, 곰보를 해학적으로 그려 낸 유희요.

[개설]

「곰보타령」은 1900년경 경기와 서울 지방의 전문 소리꾼들이 많이 부른 노래인데, 지독하게 얽은 중의 얼굴을 해학적으로 엮어 낸 휘모리잡가이다. 휘모리잡가는 빠르게 휘몰아서 부르는 잡가란 뜻이며, 익살스러운 사설을 빠른 선율로 재치 있게 엮어 가는 노래이다. 휘모리잡가에는 「만학천봉」, 「병정타령」, 「기생타령」, 「육칠월 흐린 날」, 「생매잡아」, 「바위타령」, 「맹꽁이타령」, 「장기타령」 등이 있다. 「곰보타령」의 원형은 영조(英祖)[1694~1776] 때의 시조 가객 김수장(金壽長)[1690~?]의 사설시조 「곰보가」로 보인다. 「곰보가」의 가사는 초장 “바독바독 뒤얼거진 놈아”로 시작해서 종장 “너 곳 와셔 서량이면 고기 못 잡아 대사(大事)러라”로 끝나는데, 중장에서 곰보의 얽은 얼굴을 묘사하며 고기들이 그물로 알고 달아난다는 내용을 길게 엮어 놓고 있다. 「곰보가」는 100년 뒤 고종(高宗)[1852~1919] 때의 시조 가객 안민영(安玟英)[?~?]의 사설시조 「곰보가」에서 다시 나타나는데, “바독 걸쇠 갓치 얽은 놈아 암아도 너곳 겻틔 잇시면 곡이 못 자바 대사(大事)로다”로 형식과 내용 구조가 김수장의 시조와 같다. 안민영이 김수장의 시조를 표절한 것인데, 다만 중장에서 곰보의 모습이 더욱 자세히 묘사되면서 길이가 크게 늘어났다. 두 시조는 곰보의 얽은 모습을 해학적으로 그려 내었는데, 사설을 더욱 길게 변형시켜 만들어진 노래가 잡가 「곰보타령」이다. 「곰보타령」은 1910~1920년대의 악곡집에 실려 전하며, 경기잡가의 명창 박춘재(朴春載)[1881~1948]가 1930년경 경성방송국에 출연하여 부르고, 1934년 대중잡지 『삼천리』에 소개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채록/수집 상황]

「곰보타령」은 1997년 예산문화원에서 예산군 지역의 소리꾼이 부르는 노래 가사를 채록한 것이다. 채록 당시 구연자, 채록 상황, 일시 등을 상세히 밝혀 두지 않아 사설만 『예산문화』 제26집에 실려 있다.

[구성 및 형식]

「곰보타령」은 볶는타령장단에 맞춰 부르는데, 선율 구성이 셋으로 구분된다. 첫 소절은 소리 지르듯 높게 부르며, 뒤로는 근드렁거리듯 자진 타령을 반복하고, 끝 소절에서는 시조 창법으로 마무리한다. 내용 구성은 넷으로 구분되는데, 첫머리는 “곰보 중이 시냇가로 내려온다”는 사실을 설명하고, 둘째 부분에서는 온갖 얽은 사물들을 열거하며 해학적으로 중의 얼굴을 풍자하고, 셋째 부분에서는 중의 얼굴이 얼마나 심하게 얽었던지 그물로 착각한 물고기들이 모두 달아나는 장면으로 엮었다.

[내용]

「곰보타령」의 사설은 다음과 같다.

“칠팔월 청명일에 얽은 중이 시냇가로 나려를 온다. 그 중이 얽어매고 푸르고 찡그리는 바둑판 같고, 멍석덕석 방석 같고, 어레미 시루 밑 분틀 밑 같고, 청동적철 고석매 같고, 땜쟁이 발등감투. 대장쟁이 손등 고이 같고, 진자전 산기동 같고, 연죽전 좌판, 신전마루 하미전의 방석 같고, 구타성장 소지 같고, 근정전 철망 같고, 우박 맞인 잿더미 쇠똥 같고, 경무청 차관 콩엿 꽤엿, 진고개 왜떡 조개 멍구럭 같고, 여의사 길상사 별문관사 같고, 직흥준오 줄육사오 같고, 활양의 사포관역 담께 앉은 배암이 잔등이 같고, 경상도 진상 대굿바리 꿀병 촉괘, 격자바탕 싸전가게 내림틀 같고, 변굼보 태궁보 성주패도 염마홍 같고, 감영 뒷골의 암쾡이 같고, 냉동의 박수범 같고, 새 절 중의 락도 같고, 염불안 충의 포운이 같고, 삼막 중의 덕운이 같고, 시위 일대하사 마대삼등 포대일 같고, 삼개 무동의 박태부같이 아주 얽은 중놈아, 네 얼골이 무삼 어엿부고 뚝뚝하고 영리하고 얌전한 얼골이라고 시냇가로 내리지 마라. (후략)”

[의의와 평가]

「곰보타령」은 잡가 형성에 영향을 준 김수장의 시조이나, 안민영의 시조에는 조롱의 대상이 구체적이지 않은데, 잡가 「곰보타령」에는 대상이 ‘중’으로 집약되었다. 조선시대 후기 서민 문학에 흔히 등장하는 탐관오리나 타락한 중의 모습과 연관성이 있을 개연성이 높으며, 머리를 깎은 중의 얽은 얼굴이 조롱 대상으로 더 어울렸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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