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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들강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404
한자 -江邊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민요와 무가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이명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채록 시기/일시 1999년 7월 - 「노들강변」 교원대학교 교수 최운식이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의 김성환에게 채록
관련 사항 시기/일시 2001년 - 「노들강변」 예산군에서 발행한 『예산군지』에 수록
채록지 상중리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지도보기
성격 신민요
가창자/시연자 김성환

[정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의 민중들이 고단한 삶을 풀어내던 유희적 민요.

[개설]

1930년대 문호월이 작곡하고 신불출이 작사한 「노들강변」은 신민요로서 오래도록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노래다. 그래서 「노들강변」이라고 하면 경기민요로 정착한 신민요를 먼저 떠올린다. 예산에 전해 내려오는 「노들강변」과 1930년대 발표된 경기민요 「노들강변」은 곡조가 닮아 있고, 그 내용과 감정이 일치한다. 「노들강변」의 배경에는 조선 말기와 일제강점기 민중들의 억압된 삶이 있다. 억압과 절망의 반복하는 동안 민중들은 노래를 통해 쾌락을 간접 경험하고 삶의 고통을 잊고자 하였다. 「노들강변」은 예산 지역의 민중의 한풀이적 성격을 지닌다. 노들강은 노량진 앞을 흘러가는 강으로서, 한양을 앞에 둔 한강의 지류이다. 한양은 정치사회 문화의 중심지로서 모든 것이 풍요로운 곳이며, 민중이 다가설 수 없는 곳이다. 한때나마 즐겁게 놀고 싶은 민중의 한풀이가 노래 속에 감추어져 있다.

[채록/수집 상황]

「노들강변」은 1999년 7월 교원대학교 교수 최운식이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에서 농사를 짓는 무학(無學)의 김성환[남, 76세]에게 채록하였다. 김성환은 젊은 시절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를 따라 배웠다고 한다. 「노들강변」은 2001년에 출간된 『예산군지』에 수록되어 있다.

[구성 및 형식]

「노들강변」은 전반부와 후반부의 구성으로 나누어진다. 전반부에서는 삶의 고단함을 잊을 절정의 놀이를 노래한다. 한강변의 경치 좋은 정자에 앉아 음주가무와 뱃즐긴다는 내용이다. 후반부에서는 판소리 춘향가에 나오는 「백발가」의 가사 “등장 가자 등장 가자 / 하느님 전에 등장 갈 양이면 / 무슨 말을 하실는지 / 늙은이는 죽지 말고 / 젊은이는 늙지 않게 / 하느님 전 등장 가세”와 경기도 양주에 전하는 민요 「등장가(等狀歌)」의 가사를 차용하고 있다. 그런데 단순 차용이 아니라 전반부와 내용과 교묘하게 결합시켜 주제의 일관성과 구성의 완결성을 보여 주고 있다.

[내용]

「노들강변」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한송정 숲을 빌어서 조그맣게 배를 모아 한강에 띄워 놓고 / 술이며 안주며 거문고 가야금 생새피리 북장구는 실고 / 장안의 일등 명기 좌우로 늘어 앉아 / 호걸 남자 얹혀 실고 울렁술렁이 배 띄워라 / 등장 가세 등장 가세 무삼년으루 하느님 전으로 등장 가자 / 늙은 사람은 죽지 말구 젊은 사람 늙지 말구 / 이게 다 허사로구나 살었을 적에 먹구 쓰구 놀구 가자”

[의의와 평가]

신민요인 「노들강변」이 온 국민의 사랑을 받은 노래가 된 까닭은 일제강점기 억압된 우리 민족의 정서와 맞닿아 있기 때문이지만, 사실상 일제강점기 이전부터 불려 온 노래였기 때문이다. 신민요 「노들강변」 이전의 노래는 채록된 흔적이 없었다. 그러나 예산 지역에 전해오는 「노들강변」이 있어 1930년대 이전부터 불려 오던 노래라는 것이 증명되고 있다. “노들강변 봄버들 휘 늘어진 가지에다가 /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매어나 볼까”로 시작하는 경기민요는 신불출의 순수 창작 가사라기보다는 예산의 「노들강변」이나 다른 지역에서 불려 오던 노래 가사를 차용한 것이다. 따라서 예산의 「노들강변」은 신 경기민요 「노들강변」보다 앞서 존재한 민요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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