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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 향천사와 고함바위, 그리고 배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455
한자 金烏山香泉寺-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향천리 59
시대 고대/삼국시대/백제
집필자 표윤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99년 - 「금오산 향천사와 고함바위, 그리고 배논」 예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예산의 설화』에 수록
관련 지명 금오산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산성리 지도보기
관련 지명 향천사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향천리 59 지도보기
관련 지명 종경리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종경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의각대사
모티프 유형 지명 유래담|유적 유래담|인물 행적담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전해지는 금오산 향천사에 관련된 지명의 유래에 대한 이야기.

[개설]

「금오산 향천사와 고함바위, 그리고 배논」향천사 창건과 금오산의 지명 유래, 그리고 고함바위와 배논에 얽힌 이야기이다. 백제의 승려 의각대사는 백제를 구원하기 위해 왜에 갔다가 당나라로 가서 구자산에서 석불 3,053위를 조성하여 온다. 서해를 건너 무한천에 당도한 의각대사는 금까마귀의 인도를 받아 향천사(香泉寺)를 세우는데, 향천사를 세우는 과정에서 금까마귀가 나타난 금오산(金烏山), 불상을 싣고 온 배가 도착한 석주포(石舟浦), 배가 가라앉은 배논, 예불을 드린 종성리[지금의 종경리], 불상을 실어 나르던 소가 고함을 지르고 죽은 고함바위[감바위, 감배] 등의 지명이 생겨나게 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금오산 향천사와 고함바위, 그리고 배논」은 원보산의 승려가 필사한 『향천사 사적지』에 향천사 내력에 관한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으며, 1999년 예산문화원에서 발간한 『예산의 설화』에도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내용]

652년(백제 의자왕 12)에 의각대사는 신라 무열왕(武烈王)[603~661]의 침입으로 나라가 위태로워지자 일본에 원군을 청하기 위해 바다를 건너갔다. 의각대사는 백제사에 머물렀는데, 의각대사의 모습이 장대하여 키가 8척[약 2.4m]이나 되었고 눈에서는 형형한 빛이 끊이지 않았다고 한다. 일본인들은 의각대사를 선승이라 일컬으며 정중히 모셨다. 의각대사는 다시 당나라로 들어가 구자산에 머물며 석불 3,053위와 아미타불(阿彌陀佛), 관세음보살(觀世音菩薩), 대세지보살(大勢至菩薩像) 삼존상(三尊像)과 십육나한상(十六羅漢像)을 3년간에 걸쳐 조성하였다.

656년에는 조성한 불상을 돌배[石舟]에 싣고 바다를 건너 백제 땅 오산현 북포 해안에 도착하였다. 당시 돌배가 포구에서 몇 개월을 머무니 석주포라 하였다. 의각대사는 불상을 모시기 위해 배 안에서 아침저녁으로 종을 치며 예불을 올렸는데, 이때 종소리가 들려온 곳을 가리켜 종성리[지금의 종경리]라 이르게 되었다. 예불을 올리던 중에는 어디선가 금까마귀 한 쌍이 날아와 의각대사의 주위를 빙빙 돌았다. 의각대사는 하늘의 예시가 있음을 알고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금까마귀가 이끄는 대로 따라갔다. 금까마귀는 의각대사를 오산현의 남산으로 이끌었다. 남산에 이르러 갑자기 금까마귀가 사라져 없어지자 의각대사는 금까마귀가 사라진 산을 금오산(金烏山)이라 이름 짓고 사찰을 세워 불상을 모시고자 하였다. 이때 불심이 깊은 사람이 흰 소 한 마리를 끌고 와 불상을 모시는 일을 성심으로 도우니 7일 만에 일을 모두 마치게 되었다. 일을 마친 후 흰 소는 기력이 다하였는지 큰 소리로 한 차례 울부짖고는 바위 앞에서 쓰러져 죽고 말았다. 그래서 사람들이 소가 죽은 곳의 바위를 ‘고함바위’[감바위, 감배, 고함암]라고 불렀다.

의각대사는 흰 소의 죽음을 안타깝게 여겨 12인연법(十二因緣法)이라는 법문을 설하며 바위 위에 화장을 하였다. 그랬더니 사흘 후에 흰 소가 금오산에 홀연히 나타났다. 사람들이 쫓아가 잡으려고 하였으나 순식간에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신기해하며 소가 사라진 자리에 암자를 짓고 은적암[지금의 향천리 만석동 계곡]이라 이름 지었다. 불상을 모두 모시고 나서 금까마귀가 다시 금오산 상봉에 나타났다. 금까마귀는 금오산 아랫마을의 작은 개울에서 물을 마시고는 사라졌다 나타나곤 했다. 사람들이 찾아가 보니 향기로운 냄새가 흘러나와 이름을 향천(香泉)이라 하였다. 의각대사는 금까마귀가 나타난 자리에 절을 짓고 향천사라 이름 지었다. 의자왕 16년[656] 때의 일이다. 한편 불상을 싣고 온 배는 포구에 가라앉았는데, 그래서 배가 가라앉은 곳을 배논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현재 향천사 천불전에 모신 석불은 3,053위 중 1,516위만이 남아 있고, 십육나한은 나한전에 모셔져 있다.

[모티프 분석]

「금오산 향천사와 고함바위, 그리고 배논」향천사 창건과 금오산의 지명 유래, 그리고 고함바위와 배논에 얽힌 지명 유래담이다. 의각대사와 관련한 인물 행적담이기도 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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