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서지도』 「대흥군」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051
한자 湖西地圖大興郡
이칭/별칭 비변사인방안지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문헌/문서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조민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작성 시기/일시 18세기 중엽 - 『호서지도』 「대흥」 제작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 서울특별시 관악구 관악로 1[신림동 산56-1]
성격 고지도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호서지도』에 포함된 현재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해당하는 대흥 지역의 지도.

[개설]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서 소장하고 있는 비변사(備邊司)의 도장[印]이 찍혀 있는 지도책은 총 12종 42책 660장이 있는데, 그중 18세기 중엽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6종의 도별 군현 지도집을 「비변사인방안지도」라 부른다. 도별 군현 지도집은 『영남지도』, 『호남지도』, 『호서지도』, 『충청좌도각읍지도』, 『해서지도』, 『함경도전도』 등으로 총 28첩 250장에 달하는데, 대흥 지역의 지도는 『호서지도』에 포함되어 있다. 『호서지도』는 2008년 12월 22일 보물 제1589호로 지정되었다.

[제작 발급 경위]

18세기 중엽 중앙정부에서 지방의 실정 파악을 위해 일괄적으로 제작을 지시하여 각 군현에서 제작한 것으로 보인다. 비변사의 인이 찍혀 있어 비변사에서 소장, 이용하였던 지도임을 알 수 있다.

[형태]

『호서지도』는 충청도 전체 지도 2장과 67장의 고을별 지도를 수록하고 있고, 6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1책, 2책, 3책, 5책은 1변의 길이가 0.7㎜인 방안 위에 그려져 있으며, 4책, 6책은 방안이 전혀 없다. 전자 중 3책의 충청도 전체 지도 1장을 빼면, 1책, 2책, 5책에는 31개의 고을별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 0.7㎜의 방안 위에 그리는 등 양식과 내용이 동일한 『충청좌도각읍지도』 13장을 합하면 모두 54장이 되어, 충청도 54개 고을의 숫자와 동일하다. 여기에 서로 겹치는 경우도 없기 때문에 같은 시기에 그린 지도가 다른 지도책에 수록된 것으로 볼 수 있다. 1책, 2책, 5책의 지도는 방안의 크기가 모든 지도에 동일하게 표시되어 있기 때문에 고을의 크기에 따라 지도의 크기도 각양각색이지만, 일정한 크기로 접어서 하나의 지도책을 구성하고 있다. 지도책의 크기는 세로 36.4㎝, 가로 22.6㎝이다.

[구성/내용]

대흥군은 지금의 예산군 대흥면, 광시면, 신양면, 응봉면을 포함하는 지역이었다. 읍치는 대흥면 동서리교촌리 일대에 있었다. 고을의 진산 봉수산(鳳首山)이 있는 서쪽을 지도의 상단으로 배치하였다. 봉수산에는 봉수산성이 강조되어 그려져 있다. 봉수산성은 복신(福信)을 비롯한 백제의 부흥 세력이 항거했던 임존성(任存城)으로 알려져 있다.

남쪽 백월산(白月山)의 봉우리에는 태실(胎室)이 보이는데, 1681년(숙종 7) 숙종의 부왕인 현종의 태를 묻고서 고을을 군으로 승격시켰다. 사찰과 암자도 비교적 자세히 수록되어 있다. 서쪽의 대련사(大蓮寺)는 656년(의자왕 16)에 백제 부흥군의 승장 도침선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1468년에 중창을 거친 사찰이며, 현재 경내에는 고려 말기 양식의 대련사 삼층석탑[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8호]이 남아 있다. 고을의 향교 옆에는 우천사우(牛泉祠宇)가 그려져 있다. 우천사우이약수(李若水)를 모신 사당이다. 이약수는 김굉필(金宏弼)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나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처음에는 강원도 동해안인 평해군으로 유배되었다가 1531년 대흥으로 옮겨 생을 마쳤다.

[의의와 평가]

『호서지도』는 고을에서 직접 그려서 중앙정부에 올려 보낸 대축척 지도이기 때문에 기존의 지리지나 지도에 없는 새로운 정보가 많이 첨가되어 있다는 장점을 가지고 있다.

[참고문헌]
  •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http://e-kyujanggak.snu.ac.kr)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