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청의 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34
한자 孫淸-亂
이칭/별칭 가야산적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윤용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생|시작 시기/일시 1176년(명종 6)연표보기 - 손청의 난 발생
종결 시기/일시 1177년 2월연표보기 - 손청의 난 손청 사살로 종결
성격 반란
관련 인물/단체 손청

[정의]

1176년(명종 6) 예산 출신의 손청이 난을 일으켜 가야산을 거점으로 활동하였던 사건.

[개설]

예산 출신의 손청(孫淸)가야산을 거점으로 난을 일으켜,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에 합세하여 예산현 등을 점령한 사건이다.

[역사적 배경]

고려 무인정권의 초기인 1176년(명종 6) 유명한 공주 명학소의 난[망이·망소이의 난]이 충청남도 지역에서 일어났다. 망이·망소이의 난은 망이와 망소이가 주동이 되어 과도한 부역과 차별대우 등에 불만을 품고 일어난 민중 봉기이다.

[경과]

1176년 9월 손청은 민란을 일으켜 예산현을 함락시키고 예산현 감무를 살해하였다. 이어 스스로 ‘병마사’를 칭하고, 망이·망소이의 민란 집단과 연대하면서 가야산을 거점으로 삼아 지역 일대에 지배권을 행사하였는데, 개경 정부에서는 이를 남적(南賊)이라 칭하였다. 예산현이 함락될 때 관아에서 가까운 향천사도 소실되었다. 손청의 세력은 대흥, 덕산 등 충청남도 서부 지역에 미친 것으로 보인다. 손씨가 예산현의 토성(土姓)으로 세력 있는 집안이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손청은 예산 호장층의 향리 가문 출신인 것으로 보인다.

[결과]

봉기 이듬해인 1177년 2월 정부군에 의하여 손청이 사살되고 난이 진정되었다.

[의의와 평가]

무신정권 아래 전국적으로 창궐하였던 농민 봉기의 단초를 연 것이 공주 명학소의 난이었다. 예산 손청의 난은 공주 명학소의 난에 연대하여 그 세력을 확산시킨 것으로 무신정권의 초기 민란으로서 역사적 의의를 갖는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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