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포대도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371
한자 禮包大都所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시설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성리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박성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관|개장 시기/일시 1894년 9월 29일연표보기 - 예포대도소 설치
최초 설립지 예포대도소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성리 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성리에 있었던 개항기의 내포 동학농민운동을 지휘하던 대도소.

[개설]

박인호의 막골기포에 의해 1894년(고종 31) 9월 29일 내포 전 지역에서 동학에 의한 농민항쟁이 일어났다. 이에 박인호, 박덕칠 등 지도부에게는 향후 전면전에 대비한 무장투쟁 계획을 수립하고 조직적 활동을 총지휘할 대도소가 절실하였다. 덕의대접주 박인호는 기포령을 내린 후 농민군을 규합해 현 삽교읍 지역에서 가장 큰 성리(城里)마을에 있는 덕산군 장촌면소를 점령하여 진을 설치하고서 ‘예포대도소’라 칭하고 동학농민운동의 지휘본부로 활용하였다.

예포대도소에서 무장투쟁에 필요한 무기 확보 계획을 논의하여 해미, 덕산, 온양관아 무기고를 습격하여 무장을 강화하고 전면전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예포대도소에 모인 3,000여 농민군은 각 지역 포(包) 중심 단위로 모여 지휘 체계가 서지 못하고 조직적인 군율이 없었다. 이에 1894년 10월 11일 호연초토사 홍주목사 이승우의 관군에게 기습을 당하여 패퇴하였다. 예포대도소는 물론 성리마을 전체가 동학농민군 소굴로 지목되어 모두 불태워졌고 동학농민군이 확보했던 군량미와 소금 등을 관군에게 빼앗겼다.

[건립 경위]

1894년 10월 1일 덕산군 장촌면소를 점령한 동학농민군이 진을 설치하고 전면전에 대비한 향후 계획을 수립하는 등 내포 동학농민군의 막골 본처에 있던 도 ‘막골대도소’를 장촌면소로 옮겨 설치하였다.

[변천]

예포대도소가 있던 곳은 옛 덕산군 장촌면소가 있던 곳이다. 1914년 일제의 군면 폐합 조치 이전에는 덕산군 장촌면 목소리(木巢里)였다. 지금의 삽교읍 성리에 해당하는데, 성리마을은 마한 부족국가가 있었던 곳이며 마을 전체를 둘러싼 토성이 있었다고 한다. 예포대도소 터는 공유지로 남았으나 일제강점기 지역 유지들이 개인 소유화하였으며 1966년 단일 필지에서 13필지로 분할되었다.

[현황]

예포대도소가 있던 자리는 지금은 예당평야의 중심부에 있는 전형적인 평야지 농촌마을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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