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416
한자 禮山任存城
영어공식명칭 Imjon Seong[Fortress]
이칭/별칭 봉수산성,임존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산8
시대 고대/삼국시대/백제
집필자 지원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8년 11월 17일~2008년 12월 31일 - 예산 임존성 수구지 1차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09년 9월 21일~2009년 10월 30일 - 예산 임존성 수구지 2차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1년 8월 8일~2011년 9월 30일 - 예산 임존성 남문지 발굴 조사
발굴 조사 시기/일시 2014년 6월 30일~2014년 10월 23일 - 예산 임존성 건물지 발굴 조사
문화재 지정 일시 1963년 01월 21일연표보기 - 예산 임존성 사적 제90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예산 임존성 사적 재지정
현 소재지 예산 임존성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상중리 산8 지도보기
성격 성곽
양식 테뫼식
관련 인물 복신|흑치상지|지수신|유인궤
크기(높이,길이,둘레) 2,450m[둘레]
면적 553,697㎡
문화재 지정 번호 사적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광시면, 금마면의 경계에 있는 봉수산 정상부에 세워진 백제시대 석축 성곽.

[개설]

예산 임존성은 충청남도 예산군 봉수산 정상부에 축성된 백제시대 최대 규모에 속하는 테뫼식 석성이다. 백제부흥운동복신흑치상지가 웅거하면서 주류성과 함께 중요한 거점성 역할을 수행하였다. 1963년 1월 21일 사적 제9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사적으로 재지정되었다.

[건립 경위]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임존성은 즉 백제의 복신지수신, 흑치상지 등이 유인궤와 맞서 싸운 곳인데, 현재의 [대흥]현에서 서쪽으로 13리 되는 지점에 석성이 하나 있어 둘레가 5,194척이고, 성내에 우물 3 곳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대동지지(大東地志)』에도 “임존성봉수산에 있는데, 둘레가 5,194척이고 우물이 3개 있다. 백제의 복신흑치상지가 이곳에서 유인궤와 맞서 싸웠다.”라는 비슷한 내용이 전한다. 기록을 통해 예산 임존성은 백제 후기 예산 지역의 중요한 거점성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된다. 건립 경위를 파악할 수 있는 기록이 없으나 산성의 지형을 통해 볼 때 주로 북쪽의 방어를 목적으로 구축된 산성으로 주로 고구려의 침입에 대비하여 축성된 것으로 파악된다. 웅진 천도 이후 고구려를 대비한 백제의 전초기지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위치]

임존성은 해발 약 483m의 봉수산 정상부에 있다. 봉수산예산군 대흥면, 광시면과 홍성군 금마면의 경계선에 걸쳐 있다. 동쪽으로는 무한천이 북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1964년 준공된 예당저수지가 조성되어 있다. 북쪽 지맥 2㎞ 지점에 상중리 석성이 있다.

[형태]

예산 임존성 성곽은 봉수산 정상부와 동쪽으로 90m 정도 마주보고 있는 소봉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테뫼식 석축 산성이다. 성의 둘레가 2,450m로 백제시대 최대 규모의 산성 중 하나이다. 성의 외벽은 석축으로 되어 있으며, 내벽은 토·석 혼축으로 구축되어 있다. 외벽의 축성법은 대략 네 가지 정도로 파악된다. 첫째 북벽의 일정한 크기로 다듬은 화강암을 사용하여 바른층쌓기 방식으로 쌓아 올린 방법, 둘째 성벽의 하단부와 상단부를 동일한 할석을 이용하여 쌓은 방법, 셋째 할석과 자연석을 이용하여 외면만 맞추면서 쐐기돌로 메우는 방법, 넷째 하단부의 성벽은 큰 돌을 사용하고 상단부는 작은 돌을 사용하여 축성된 방식으로 구분된다. 동일한 성곽에 다른 축성법이 혼용되고 있는 점은 임존성이 축조 이후에도 여러 차례 개보축이 이루어졌다는 고고학적 증거이다. 성의 안쪽으로는 7~8m 정도의 내호가 돌려져 있다.

[현황]

임존성의 정상부와 남벽쪽 일부에서는 평탄 대지면이 조성되어 있어 건물지가 존재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건물지는 대략 20개소인데, 북벽 부근 5개소, 동벽 부근 2개소, 서벽 부근 3개소, 남벽 부근 10개소이다. 백제시대의 토기편과 와편 등이 산재되어 확인된다. 성의 네 모서리에는 다른 곳보다 2m 정도 높게 쌓여 있는 곳이 있어 고대(高臺)로 추정되는데, 고대는 서벽에서도 1개가 더 확인되어 총 5개소이다.

성의 남문지에는 약간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데, 폭 230㎝이며 덧붙여 방형 옹성을 설치하였던 흔적이 남아 있고 광시면 동산리 쪽으로 연결된다. 남벽에는 폭 70㎝, 높이 90㎝의 배수구가 설치되어 있다. 성의 서북쪽으로는 폭 6m의 북문지가 남아 있는데, 대흥면 소재지와 연결된다. 성벽은 대체로 높이 2.5m, 폭 약 3.5m 정도인데, 성벽의 상부 폭은 1.6m 내외이다. 우물지는 남벽 사면에서 3개소가 확인되었다.

임존성에 대한 조사는 1999년 정밀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최근까지 네 차례의 발굴 조사가 진행되었다. 발굴 조사는 남벽 구간을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조사 결과 조선시대 수구지와 우물지, 고려~조선시대의 남문지, 그리고 통일신라시대 건물지 등이 확인되었다. 2018년 현재까지 백제시대 유구는 확인되지 않았으나 지표면에서 백제~통일신라시대의 기와편과 토기편이 다수 수습되었다. 특히 ‘임존(任存)’, ‘존관(存官)’, ‘임존관(任存官)’ 등 명문와가 수습되어 임존성임을 증명하고 있다.

2008년 11월 17일부터 2008년 12월 31일까지 임존성 수구지 1차 발굴 조사가 있었다. 2009년 9월 21일부터 2009년 10월 30일까지 임존성 수구지 2차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2011년 8월 8일부터 2011년 9월 30일까지 임존성 남문지 발굴 조사가 있었다. 2014년 6월 30일부터 2014년 10월 23일까지 임존성 건물지 발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의의와 평가]

임존성백제부흥운동을 전개한 역사적 성곽으로서 백제부흥운동사를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고고학적 유적이다. 또한 백제부흥운동복신, 도침 등을 중심으로 봉기된 최초의 거병지이자 지수신이 마지막까지 항전한 역사적인 상징성을 지닌 곳이다. 백제시대 5방성 중 서방성으로 위치 비정되기도 하여 백제 지방 통치체제와 서방성 지역의 방어체계를 규명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