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533
한자 禮山大興東軒-衙門
이칭/별칭 대흥 동헌,대흥읍성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의좋은형제길 33[동서리 106-1]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조민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407년연표보기 - 예산 대흥현 동헌 및 아문 건립
개축|증축 시기/일시 1703년연표보기 - 예산대흥동헌및아문 중수
개축|증축 시기/일시 1914년 - 예산대흥동헌및아문 대흥면사무소로 개조하여 이용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9년연표보기 - 예산대흥동헌및아문 해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81년연표보기 - 예산대흥동헌및아문 해체 복원
문화재 지정 일시 2003년 10월 30일연표보기 - 예산대흥동헌및아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4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예산대흥동헌및아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예산대흥동헌및아문 -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의좋은형제길 33[동서리 106-1]지도보기
성격 관아
정면 칸수 6칸
측면 칸수 3칸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흥면 동서리에 있는 조선 초기의 관아 건축물.

[개설]

예산대흥동헌및아문은 조선시대 대흥현의 현청(縣廳)인 대흥관아의 부속 건물이다. 동헌(東軒)은 고을의 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이며, 아문은 대흥동헌으로 들어서는 문이다. 예산대흥동헌및아문은 예산군에 남아 있는 유일한 관아 건물이다. 1407년[태종 7] 창건하였으며, 1914년 대흥면사무소로 개조하여 사용하다가 1979년 해체하여 복원하였다. 2003년 10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7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예산군 대흥면의 대흥보건지소와 대흥면소방대를 왼쪽에 두고 이동하여 대흥초등학교 앞에서 직진하면 대흥면행정복지센터가 있고, 그 왼쪽에 예산 대흥동헌 및 아문이 있다.

[변천]

조선시대 대흥현은 읍성이 둘러 있고 안에 읍치가 형성되어 있었다. 조선시대 각종 지리지의 기록에 대흥읍성의 둘레는 1,115척[약 338m]이고 우물은 3개라고 나와 있다. 성곽과 성지는 조선 말기까지 존재하였으나 현재는 모두 파괴되어 유허를 찾기 어렵다.

대흥면 상중리동서리 일대에 예산군 내에서는 유일하게 관아 건물이 남아 있는 조선시대 대흥현의 읍성터가 있다. 관아 시설은 왕의 전패를 모시는 객사와 수령의 업무 공간이며 생활공간인 아사[동헌, 내아]가 핵심 시설이고 이외에 하급 관리와 향리, 노비 등이 머무는 공간 및 창고, 누정, 사정(射亭) 등의 부속 시설이 있었다. 대흥현의 치소는 현 대흥면 동서리대흥면사무소 일대에 있었다. 관아 건물에 대한 기록은 조선 후기 『여지도서』에 처음 보이는데, 기록에 따르면 객사의 정청(正廳) 3칸, 객사 동대청(東大廳) 12칸, 견사정(見思亭) 14칸, 서헌방(西軒房) 12칸, 동헌방(東軒房) 16칸, 하마대(下馬臺) 4칸이 있었고, 아사(衙舍)는 구동헌(舊東軒) 9칸, 신동헌(新東軒) 16칸, 남상방(南上房) 4칸, 북상방(北上房) 5칸, 대청(大廳) 6칸, 초당(草堂) 5칸, 행랑(行廊) 7칸이 있었다고 한다. 『1872년 지방지도』를 통해서도 일부 확인할 수 있다.

동헌이란 고을의 수령이 정무를 집행하던 건물을 말하는데, 생활 처소인 내아(內衙)[서헌이라고도 함]와 구분된다. 보통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동헌이라 불리게 되었으며 수령이 주재하는 관청의 본 건물이다. 대흥 동헌은 조선 후기의 건축양식인데 상량문에 ‘영락(永樂) 5년[1407]’에 지었다는 기록이 있어 대흥향교[1405]와 함께 조선 태종 때 지어진 것으로 생각되나, 강희(康熙) 42년[1703] 중수하였다는 기록이 있어 조선 숙종 때에 대흥이 군으로 승격될 당시 중수하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문은 대흥초등학교 건물 앞 정원에 있었으나, 모두 해체해 자재로 예산읍 산성리 무한산성 외곽에 화랑묘를 세웠다. 객사는 대흥초등학교 현 교사 자리에 있었으며 객사의 동쪽에 연못이 있었고, 연못 속에는 포정정이 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의 관아 시설은 일제강점기가 시작되면서 해체되어 매매되는 등의 수모를 겪어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흥 관아의 동헌과 아문뿐이다. 동헌 건물은 1914년에 대흥면사무소로 개조하여 사용되다가 1979년 해체되어 복원, 정비되고 1980년 면사무소를 현재와 같이 신축하고 1981년 해체, 복원하여 옛 모습을 다시 찾았다.

[형태]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흥면행정복지센터 옆에 있는 동헌과 ‘임성아문(任城衙門)’ 현판이 걸린 아문뿐이다. 대흥동헌은 정면 6칸, 측면 3칸으로 된 16칸 건물로 일자형으로 평면을 이루고 있다. 대흥동헌은 전면으로 반 칸 넓이의 툇마루가 이어져 있고 건물 중앙 부분에 두 칸 통문의 넓은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으로는 한 칸의 온돌방, 오른쪽으로는 두 칸의 큰 온돌방으로 되어 있다. 대청의 천장은 연등천장이고 퇴칸은 우물반자 형태의 눈썹천장으로 되어 있다. 네 벌대로 높게 쌓은 장대석 기단 위에 앞면에는 방형의 초석을 놓았고, 뒷면에 덤벙주석을 혼합하여 놓았다. 기둥도 내부에는 방형의 기둥을 세운 반면 외부에는 모두 원형의 기둥을 세웠다. 지붕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아문은 지붕을 높게 올린 솟을대문 형태로 ‘임성아문’ 현판이 걸려 있다. ‘임성’은 통일신라 때 대흥 지역을 부르던 명칭이다.

[현황]

현재 관아에는 동헌과 ‘임성아문’ 현판이 걸린 아문만이 남아 있다. 대흥동헌 및 아문 앞에는 왼쪽으로 ‘예산 이성만형제 효제비’가 세워져 있으며, 대흥 동헌의 뒤쪽 오른쪽에는 화령옹주 태실[영조와 숙의문씨의 딸, 추사 김정희의 증조부인 김한신의 조카며느리]과 척화비가 있다.

[의의와 평가]

예산 대흥동헌 및 아문은 대흥 지역의 역사를 증명하는 건축물이자 기본 구조가 잘 남아 있는 예산 지역의 유일한 관아 건축물로 역사적, 건축학적 가치가 있어 보존 가치가 높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