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541
한자 李南珪三節墓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능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상항방산로 319-50[방산리 산7-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이해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1977년 6월연표보기 - 이남규 삼절묘 이남규의 비석 건립
조성 시기/일시 1984년 10월연표보기 - 이남규 삼절묘 이충구의 묘비 건립
조성 시기/일시 1983년 10월연표보기 - 이남규 삼절묘 이승복과 김응길의 묘비 건립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1855년 - 이남규 출생
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1907년 - 이남규 사망
현 소재지 이남규 삼절묘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상항방산로 319-50[방산리 산7-1]지도보기
성격 능묘
관련 인물 이남규|이충구|이승복

[정의]

애국지사 이남규와 아들 이충구, 교구꾼 김응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조성한 묘.

[개설]

이남규 삼절묘는 1907년 의병으로 활약한 수당(修堂) 이남규(李南奎)[1855~1907]와 아들 이충구, 손자 평주(平洲) 이승복(李昇馥)[1895~1978], 교구꾼 김응길의 묘이다. 이남규, 이충구, 김응길은 일제에 항거하며 일본 헌병에 의해 순절하였다. 일제에 항거한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977년부터 1984년에 걸쳐 조성한 묘이다. 지금은 묘비만 남아 있고, 1대 이남규, 2대 이충구, 3대 이승복, 충노 김응길은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묘역에, 4대 이장원은 국가유공자로서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어 있다.

이남규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다. 이남규는 1875년 사마시에 합격하여 관직에 올랐으나 일본이 저지른 각종 만행을 규탄하다 예산으로 낙향하였다. 1907년[고종 44] 일본에 귀순할 것을 요구하는 일본군에 항거하다 아들 이충구와 함께 순절하였고 교구꾼이었던 김응길 역시 뒤를 따랐다. 나라에 대한 이남규의 ‘충’과, 아버지에 대한 아들 이충구의 ‘효’, 주인에 대한 김응길의 ‘의’로 삼절을 높이 기리게 되었다. 1962년 이남규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고 1991년 이충구에게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2000년 김응길에게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이남규의 손자인 평주 이승복 또한 독립운동가로 활동하였으며, 증손자인 이장원6.25전쟁에 참전하여 순국하였다.

[위치]

예산군 대술면 소재지에서 북동쪽으로 약 3.5㎞ 가다 방산저수지 방향으로 3.5㎞를 더 이동하면 방산리 양지말마을에 이른다. 이남규 삼절묘는 양지말마을 남쪽 구릉에 있다.

[형태]

이남규 삼절묘는 왼쪽부터 수당 이남규, 아들 이충구, 손자 이승복, 교구꾼 김응길의 비석이 나란히 서 있다. 이남규의 비석은 1977년 6월, 이충구의 비석은 1984년 10월, 이승복과 교구꾼 김응길의 비석은 1983년 10월 세워졌다.

[의의와 평가]

이남규 삼절묘는 예산의 애국지사 수당 이남규의 순절을 길이 알릴 뿐만 아니라 대를 이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절개와 효, 의를 함께 기리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더욱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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