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584
한자 金漢鍾義士生家址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장신신흥길 283-12[신흥리 70]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류용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997년 - 김한종의사생가지 준공
조성|건립 시기/일시 1997년연표보기 - 김한종의사생가지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96년 11월 30일연표보기 - 김한종의사생가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3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한종의사생가지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현 소재지 김한종의사생가지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장신신흥길 283-12[신흥리 70]지도보기
원소재지 김한종의사생가지 -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장신신흥길 283-12[신흥리 70]
성격 가옥
양식 초가집
관련 인물 김한종
면적 1,018㎡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광시면 신흥리에 있는 독립운동가 김한종이 태어난 집.

[개설]

김한종의사생가지는 일제강점기 예산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한종(金漢鍾)[1883~1921]이 태어난 곳이며 독립운동을 도모하던 장소이기도 하다. 김한종은 1915년 박상진 등과 함께 대구에서 비밀결사인 대한광복회를 조직하고, 충청·전라지부장으로 임명되어 국권회복운동 자금 모금 등으로 독립운동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1918년 대한광복회조직이 발각되어 1918년 1월 28일 일본 경찰에 붙잡혔고, 1921년 8월 11일 광복단 총사령 박상진과 함께 처형되어 순국하였다.

[건립 경위]

김한종의사생가지는 1996년 11월 30일 문화재로 지정될 당시 안채는 쓰러지고 사랑채는 형태만 남아 있었다. 김한종의 손자가 1990년 고향으로 돌아와 생가를 보호, 관리하고 있으며 2000년 다시 건물을 지었다.

[위치]

예산군 광시면행정복지센터에서 광시소길을 따라 200m 정도 이동하다가 오른쪽으로 돌아 예당로를 따라 이동한다. 광시교를 지나 4㎞ 정도 가면 신흥리에 다다른다. 김한종의사생가지는 신흥리 경로당을 따라 20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다.

[형태]

김한종의사생가지는 초가집으로 앞뒤 2동이 있다. 앞에서 보이는 사랑채는 전면 4칸, 측면 2칸이며, 뒷편의 안채는 전면 3칸, 측면 2칸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의 주련(柱聯)에는 김한종 의사가 남긴 유언이 적혀 있다. 김한종의사생가지의 면적은 1,018㎡이다.

[현황]

김한종의사생가지는 안채와 사랑채로 나뉘어 있는데 평상시에는 서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2017년 8월 15일 광복절에는 김한종 의사의 애국애족 정신을 기리는 ‘제10회 김한종 문화제’가 광시 웅산초등학교에서 열렸다. 김한종 기념관, 김한종의사생가지 등은 진입로와 주차 공간이 좁아 많은 사람들이 방문할 수 없어 웅산초등학교에서 개최하였다. 1996년 11월 30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35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