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587
한자 不祧廟
이칭/별칭 불천위,불천지위 묘,불천위 사당,신주,사당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홍제연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지역에 있는 신위를 옮기지 않도록 나라에서 허락받은 신주를 모시는 조선시대의 사당.

[개설]

부조묘는 불천위(不遷位) 제사의 대상이 되는 신주를 모시는 사당이다. 조선시대 조상의 제사는 4대까지 조상의 신주를 집안의 사당에 모시고 제사를 지내었다. 따라서 제사를 모시던 종손이 죽고 그 후손이 뒤를 이어 제사를 모실 때는 기존에 모시던 가장 윗대의 조상 위패는 사당에서 꺼내 땅에 묻는 것이 예의였다. 불천위, 부조묘는 이와 달리 특별히 왕의 허락을 받아 영원토록 신위와 제사를 모시도록 하였다.

부조묘는 주로 나라에 큰 공훈이 있는 사람이나, 위험에 빠진 나라를 구하기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들에게 내려지는 특전이었다. 이렇게 불천지위(不遷之位)가 된 대상은 4대 봉사가 끝난 후에도 신주를 땅에 묻지 않으며 계속 후손들에게 기제사, 즉 불천위제를 받게 되었다. 불천위를 모신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자 향촌 사회에서 그 가문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이기도 하였다.

[예산의 부조묘]

예산 지역에서 알려진 부조묘로는 호산군 이현 부조묘(湖山君李鉉不祧廟), 문열공 이계전 부조묘(文烈公李季甸不祧廟), 예산 이산해 부조묘(禮山李山海不祧廟), 이산보 부조묘(李山甫不祧廟), 성희옹사(成希雍祠)가 있다.

호산군 이현 부조묘의 이현(李鉉)[?~?]은 조선 전기의 대흥군 사람으로 본관은 전주이며 양녕대군의 손자이다. 호산군(湖山君)으로 봉군을 받았다. 성종 때 좌리공신(佐理功臣)이 되어 불천위를 받았고 시호는 소평공(昭平公)이다. 이현의 부조묘와 묘는 응봉면 평촌리 147-1 전주이씨 선산에 있다.

문열공 이계전 부조묘의 조선 전기 문신 이계전(李季甸)[1404~1459]은 1427년(세종 9)에 친시 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집현전 학사가 된 이래 다수의 국가 편찬 사업에 참여하였고 1453년(단종 1)의 계유정난에 참여하여 정인지 등과 정난공신 1등에 녹훈되었다. 문열공 가문은 이계전의 7대손인 이흡(李洽)이 덕산에 입향하면서 세거하게 되었다. 현재 이계전 부조묘 사당은 부조묘와 삼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매년 음력 1월 3일 제향을 지낸다.

이산해 부조묘이산해 사당으로 불린다. 이산해(李山海)[1539~1609]는 시호는 문충(文忠)이고, 선조 대에 북인의 영수로 영의정을 두 번이나 지냈으며, 종계변무(宗系辨誣)의 공으로 광국공신에 책록되었다. 이산해의 묘소 아래 세워진 부조묘에는 위패와 공신 영정을 모시고 있다.

이산보 부조묘는 이산보 불천지위 사당(李山甫不遷之位祠堂)으로 불리며 1638년 보령 청라면 장산리에 건립되었다가 11대 후손이 광시면 장신리로 이사하면서 1885년 현재의 위치로 이건되어 봉안되었다. 내부에는 위패와 함께 1638년 보령 청라면 장산리 부조묘 사당 건립 시 세운 상량보가 보존되어 있다.

성희옹사는 중종반정 3등 공신인 성희옹(成希雍)[1464~1526]의 불천위 사당이다. 성희옹의 처가가 귀곡리인 인연으로 후손들이 귀곡리에 정착하게 되었고 후손이 이주하면서 부조묘가 예산에 세워지게 되었다.

[평가와 의의]

부조묘는 국가가 인정하는 특별한 공이나 행적을 보인 인물에게 주어진 특전으로 왕의 직접적인 허락을 받고 건립된 유적이다. 부조묘는 향촌 사회에서 가문의 위상과 품격을 상징한다고 할 수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02.02 내용 현행화 이현의 부조묘와 묘가 응봉면 평촌리에 있었다고 전하나 현재는 흔적을 찾기 어렵다. -> 이현의 부조묘와 묘가 응봉면 평촌리 147-1 전주이씨 선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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