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636
한자 大木匠
영어공식명칭 Great carpenter
이칭/별칭 도편수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대동리 산23-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류용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특기 사항 시기/일시 1982년 06월 01일연표보기 - 대목장 중요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
대목장 거주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대동리 산23-1 지도보기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에 거주하는 전통 목조 건축물의 기술 설계부터 공사 감리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기능을 가진 장인.

[개설]

대목장은 집 짓는 일의 전 과정, 즉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기술 설계부터 공사의 감리까지 전 과정을 책임지는 목수로, 궁궐이나 사찰, 군영 시설 등을 건축하는 도편수를 칭하기도 한다, 대목장은 창호, 난간 등의 목공일을 맡아하는 소목장과 구분한 데서 나온 명칭이다. 대목장은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서 무형문화재로 지정하여 그 제작 기능을 보호 전수하고 있으며, 1982년 6월 1일 국가유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예산군 덕산면 대동리에 사는 대목장 전흥수(田興秀)는 40여 년간 한국의 대표적인 건축물인 숭례문을 비롯하여 예산의 사찰인 수덕사 대웅전, 또한 서산 부석사 무량수전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수하였고, 전통 무형문화재 관련 분야 기술을 인정받아 국가무형문화재 제74호로 지정되었다.

[유래와 변천]

흔히 나무를 다루어 집짓는 일로 업을 삼은 사람을 목수 또는 목장(木匠)이라 한다. 건물을 지을 때 목수 이외에도 단청을 하는 사람, 기와를 올리는 사람 등 각각의 역할이 있는데 이 모두가 조화롭게 이루어져야만 완성이 된다. 그중 대목장이 처음부터 건물을 설계하고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으며 공사의 관리 감독까지 전 과정을 확인하기 때문에 역할과 책임이 크다.

[기록에 나타나는 대목장]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궁궐과 사찰 등의 주요 건물은 대부분 목조건축물로 이루어졌고, 따라서 목조건축이 특히 발달하였다.

19세기 중엽 조선 철종 때의 『인정전중수의궤(仁政殿重修儀軌)』에 따르면 도(都)편수와 부(副)편수가 있어 공사 전체를 주관하였고, 기둥과 보 및 지붕구배는 정현(正絃)편수, 공포짜는 일은 공도(工蹈)편수, 서까래를 깎아 거는 일은 연목(椽木)편수가 분담하였다. 또, 18세기 말 수원의 화성(華城)을 축성할 때는 선장(船匠), 목혜장(木鞋匠), 조각장(彫刻匠) 등이 모두 재목을 다듬는 일에 부역되었음을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많은 목수가 동원되는 큰 건축공사에서는 도편수·부편수와 같은 대목은 재목을 마름질할 수 있도록 먹줄을 튀겨 주어야 하고, 수치에 엄격하고 밝아야 한다.

통일신라의 관직을 보면 도시행정을 관장하는 전읍서(典邑署)에 경(卿) 2인, 감(監) 4인, 대사읍(大司邑)·중사읍(中司邑) 각 6인, 소사읍(小司邑) 9인, 사(史) 16인, 목척(木尺) 70인이라 하였는데, 그 가운데 상당수가 전문직으로서의 목수로 보인다. 고려시대도 선공시(繕工寺)와 도교서(都校署)의 목업(木業)에 벼슬이 주어졌다. 조선시대는 『경국대전』의 경공장조(京工匠條)에 규정하기를, 선공감에 60인의 목장을 상비하도록 하였는데, 세종 때 서울 숭례문(崇禮門)의 재건 기록에 따르면 대목이 정5품이었다. 그만큼 목수의 위상이 높았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목수에게 벼슬을 주는 제도가 없어졌고, 20세기에 들어오면서는 궁궐과 관아 등 큰 목조건물을 짓지 않게 되어 그 직능이 한층 쇠퇴하였다.

건축에 사용되는 목재의 수종은 소나무와 느티나무이다. 궁궐 건축에는 소나무만을 주로 사용하였고, 사찰이나 향교 서원 등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가 혼용되었다.

[대목장 전흥수]

대목장 전흥수는 1938년 예산군 덕산면 대동리 출생으로, 18세에 고 김중희의 문하생이 되어 본격적으로 입문하였다. 40여 년간 숭례문, 수덕사 대웅전, 부석사 무량수전, 화엄사 각황전 등 다수의 문화재를 보수하였다. 1998년에는 고향인 덕산면 대동리한국고건축박물관을 건립하여 건축물 등을 전시하고 있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