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651
한자 妙法蓮華經 卷一-二
분야 종교/불교
유형 문헌/전적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19]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류용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간행 시기/일시 1470년 - 묘법연화경 간행
문화재 지정 일시 2008년 03월 12일연표보기 - 예산:묘법연화경 권1~2 보물 제1147-2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묘법연화경 권1~2 보물 재지정
소장처 수덕사 근역성보관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수덕사안길 79[사천리 19]지도보기
성격 기록유산
권책 2권 1책
행자 10행 19자
어미 상하내향어미
문화재 지정 번호 보물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는 수덕사에서 관리하고 있는 1470년(성종 1) 간행된 불경.

[개설]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 권1~2는 1470년 4월 정희왕후(貞熹王后)[1418~1483]가 세조와 의경왕(懿敬王)[덕종(德宗)], 그리고 예종의 명복을 빌기 위해 발원하여 간행한 전7권의 불경 가운데 두 권이다. 2008년 3월 12일 보물 제1147-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보물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에 있는 수덕사에서 관리하고 있다.

[저자]

정희왕후는 고려시대부터 명문가로 이름이 높았던 파평윤씨(坡平尹氏) 가문의 딸로, 1428년 11세의 나이에 수양대군(首陽大君)[후일 세조]과 혼례를 올리고 왕실의 일원이 되었다. 슬하에 2남 1녀[의경세자, 예종, 의숙공주]를 두었다.

[편찬/간행 경위]

묘법연화경은 정희왕후가 둘째 아들인 예종이 죽은 뒤 이미 고인이 된 남편 세조와 의경왕, 그리고 예종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간행하였다. 원래 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에 있는 천장사에서 소장하고 있었으나, 지금은 본사인 수덕사에서 위탁받아 근역성보관에서 관리하고 있다. 각 장의 오른쪽 아래에 권돈일(權頓一)·고말종(高末終)·장막동(張莫同)·우인수(禹仁守)·최금동(崔今同)·이영산(李永山)·최덕산(崔得山) 등 판각자(板刻者)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어 여러 사람이 번갈아 새겼음을 알 수 있다. 보물 제1147-1호에 해당하는 묘법연화경 권3~7은 개인이 소장하고 있으며, 이외에도 묘법연화경은 다양한 판본들이 보물로 지정되어 있다.

[형태/서지]

묘법연화경은 근본 경전으로 『화엄경(華嚴經)』과 함께 한국불교사상을 확립하는 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친 경전이며, 초기 대승경전(大乘經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불경이다.

처음 기록에 보이는 곳은 『삼국유사(三國遺事)』이며, 고려시대 의천(義天)의 『신편제종교장총록(新編諸宗敎藏總錄)』에 『법화경』에 대한 신라 때의 연구 주석서를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미루어 삼국시대부터 널리 유통된 것으로 판단된다. 우리나라에서 유통되는 『법화경』은 1236년(고종 23)과 1467년(세조 13)의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 송나라의 승려인 계환(戒環)이 1126년에 저술한 『묘법연화경요해(妙法蓮華經要解)』7권본이다. 현존 판본은 고려시대 3종과 조선시대의 117종을 합하여 총 120종에 이르고 있으며, 현존하는 법화경판은 34종 3,036장이다.

묘법연화경 권1~2의 판본은 성종 때의 초간본으로 판각 상태가 정교하고 인쇄도 매우 깨끗하다. 특히 당시의 일류 각수(刻手)인 이영산·장막동·최금동 등이 판각해 그 새김이 아주 정교하다.

[구성/내용]

우리나라에서 유통된 『법화경』은 대부분 계환의 해석이 붙어 있는 것을 사용하였는데, 이때 새긴 묘법연화경은 천도의식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원문만 새긴 것이다.

[의의와 평가]

묘법연화경 권1~2는 묘법연화경 권3~4[보물 제1164-1]와 동일한 판본이며, 판각자의 이름도 같다. 간행 동기와 시기를 밝히고 있어서, 국가적으로는 불교를 배척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을 표방하였으나 조선 왕실 내부에서는 오히려 불교를 선호하였던 신앙의 일단을 드러낼 뿐 아니라 서지학적 가치도 매우 높은 자료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