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권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672
한자 安東權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운곡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본관 안동 - 경상북도 안동시
입향지 안동권씨 예산 입향지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운곡리 지도보기
세거|집성지 안동권씨 예산 세거지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운곡리 지도보기
묘소|세장지 안동권씨 예산 세장지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평촌리 지도보기
성씨 시조 권행(權幸)
입향 시조 권빈(權璸)

[정의]

권행을 시조로 하고, 권빈을 입향조로 하는 충청남도 예산군의 세거 성씨.

[연원]

안동 권씨의 시조는 권행(權幸)[?~?]으로, 신라 말 안동의 별장(別將)으로 있다가 견훤의 후백제군과 싸워 이겨 고려 창업에 공을 세웠다. 권행은 본래 김씨였으나 고려 태조로부터 권씨 성과 안동(安東)을 식읍으로 하사받았다. 이후 후손들이 안동을 본관으로 삼게 되었다.

[입향 경위]

안동권씨(安東權氏) 예산 입향조인 권빈(權璸)[?~?]의 자는 숙옥(叔玉)이며, 아버지는 권유순(權有順)이다. 1482년(성종 13) 문과에 급제하여 금산군수, 전한 등을 역임하였다. 중종 때 청백리(淸白吏)에 이름이 올랐다.

『안동권씨 세보(安東權氏世譜)』에 따르면 청백리 권빈이 1500년에 사간원사간, 홍문관전한으로 발탁되었으나 병환으로 처가의 고향인 예산군 응봉면 운곡리에 낙향하였고 한다. 따라서 1500년경에는 운곡리에 터를 잡았으며 이후 안동권씨 집성촌을 이루었다고 볼 수 있다.

[현황]

예산군 내에 안동권씨는 200여 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이 중 응봉면 운곡리에는 권빈의 입향 이후 17대가 이어져 내려왔으며 현재 40여 가구가 살고 있다.

[관련 유적]

입향조 권빈과 후손들의 묘소가 예산군 응봉면 평촌리 선산에 있다. 15~16기로 이루어져 있는 무덤 가운데 아래쪽에 자리 잡은 쌍분이 권빈의 묘소이다.

운곡리 안동권씨 가문은 여러 청백리와 효자를 배출하기도 하였다. 권빈은 금산[현 김천]군수로 재임 시 덕행을 베풀어 지역 주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제향하였고 중종 때 청백리로 녹훈되었다. 권빈의 아들 중 맏아들 퇴우당(退憂堂) 권홍수(權弘手)는 연기현감을 역임하였고 조광조(趙光祖)와 친분이 깊었으며, 권복수(權福手)는 김해부사를 지냈다. 후손 권경욱(權景昱)은 강학년(姜鶴年)의 문인으로 학행이 뛰어나 상서원직장을 역임하였으며 영조 때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효행이 뛰어난 인물로는 부자 효자인 권의봉(權儀鳳)과 권병찬(權丙燦), 그리고 권사익, 권태원 등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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