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712
한자 金興慶
영어공식명칭 Kim Hungkyeng
이칭/별칭 자유(子有),숙기(叔起),급류정(急流亭),정헌(靖獻)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순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77년연표보기 - 김흥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99년 - 김흥경 정시문과 병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722년 - 김흥경 신임사화로 인해 파직
활동 시기/일시 1724년 - 김흥경 도승지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26년 - 김흥경 동지사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27년 - 김흥경 정미환국으로 인해 파직
활동 시기/일시 1728년 - 김흥경 우참찬으로 복직
활동 시기/일시 1731년 - 김흥경 이조판서 제수
활동 시기/일시 1732년 - 김흥경 황해감사 부임
활동 시기/일시 1735년 - 김흥경 영의정 임명
활동 시기/일시 1735년 - 김흥경 기로소 입소
몰년 시기/일시 1750년연표보기 - 김흥경 사망
출생지 김흥경 출생지 - 충청남도 서산시
묘소|단소 김흥경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산73-28 지도보기
성격 문신
성별
본관 경주(慶州)
대표 관직 영의정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묘소를 쓴 조선 후기의 문신.

[개설]

김흥경(金興慶)[1677~1750]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벼슬이 영의정에 이르렀으며, 70세가 넘어 기로소에 들었던 인물이다.

[가계]

김흥경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자유(子有)·숙기(叔起), 호는 급류정(急流亭), 시호는 정헌(靖獻)이다. 학주(鶴洲) 김홍욱(金弘郁)의 증손자이다. 영조의 둘째 딸 화순옹주(和順翁主)와 혼인한 월성위(月城尉) 김한신(金漢藎)이 아들이며,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가 고손자이다.

[활동 사항]

김흥경은 1677년 충청남도 서산에서 태어났다. 1699년(숙종 25)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검열·주서·정언·부교리·집의·승지·대사간 등을 역임하였다. 경종 때 한성부윤으로 재직 중 신임사화(辛壬士禍)에 연루되어 파직되었다가, 1724년 경종이 승하하고 영조가 즉위하면서 소론 일파가 제거되어 도승지로 복직되었다. 1725년에는 우참찬으로 동지사가 되어 청나라에 다녀왔다.

김흥경은 1727년(영조 3) 정미환국으로 다시 쫓겨났다가 이듬해 우참찬으로 복직되었으나, 영조의 탕평책에 반대하다가 다시 파직되었다. 1730년(영조 6) 좌참찬에 복직되고 이조판서를 거쳐 우의정·영의정에 올랐다. 70세가 넘어 벼슬에서 물러나 기로소에 들어 봉조하(奉朝賀)[조선 시대에, 종이품의 관리로 사임한 사람에게 특별히 주던 벼슬]가 되었다. 1750년(영조 26) 사망하였다.

[묘소]

김흥경의 묘소는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산73-28번지에 있다. 아들 김한신은 영조로부터 별사전(別賜田)으로 받은 용궁리에 아버지 김흥경의 묘역을 조성한 후 1752년(영조 28) 오석산에 있던 화암사를 원찰로 중건하여 아버지 묘역을 관리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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