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조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755
한자 金祖淳
영어공식명칭 Kim Josoon
이칭/별칭 낙순(洛淳),사원(士源),풍고(楓皐)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조선/조선후기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65년연표보기 - 김조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85년 - 김조순 정시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802년 - 김조순 영안부원군 책봉
몰년 시기/일시 1832년연표보기 - 김조순 사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안동(安東)
대표 관직|경력 이조판서|영안부원군

[정의]

조선 후기 예산의 덕잠서원 원장을 역임한 문신이자 종친.

[개설]

김조순(金祖淳)[1765~1832]은 조선 후기 문신이자 순조의 장인이다. 덕잠서원(德岑書院)의 원장을 역임하며 예산과 관계를 맺었다.

[가계]

김조순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초명은 김낙순(金洛淳), 자는 사원(士源), 호는 풍고(楓皐)이다. 시호는 충문(忠文)이다. 영의정 김창집(金昌集)의 4대손이며, 할아버지는 김달행(金達行)이다. 아버지는 부사 김이중(金履中)이며, 어머니는 신사적(申思迪)의 딸 평산신씨(平山申氏)이다. 순조(純祖)의 부인인 순원왕후(純元王后) 김씨가 딸이다.

[활동 사항]

김조순은 1785년(정조 9)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초계문신으로 발탁되었다. 강원도·황해도·함경도 지방의 수령·찰방 중에 겸사(兼史) 1명을 두어 그 지방의 민요와 풍속을 채록해 시정기(時政記)에 수록하자는 의견을 건의하여 실시하였으며, 1788년 규장각의 대교 때 당쟁을 단호히 없앨 것을 주장하기도 하였다.

김조순은 순조 즉위 후 부제학·병조판서·이조판서 등 여러 요직이 제수되었으나 사양하였다. 1802년 양관 대제학 등을 거쳐 딸이 순조의 비가 되자 영안부원군에 봉해졌다.

김조순이 예산과 관계를 맺게 된 것은 말년에 자암(自庵) 김구(金絿)를 배향한 덕잠서원의 원장을 맡으면서부터이다. 1714년(숙종 40) 건립된 덕잠서원은 100여 년이 지나며 건물이 많이 낡았는데 1813년(순조 13) 당시 원장이던 김조순이 비용을 전담하여 서원을 중수하기도 하였다. 김조순의 아들인 김좌근또한 덕잠서원 원장을 맡았으며 1856년(철종 7) 덕잠서원 중수 때 3,000냥을 내어 공사를 진행하였다고 한다.

[학문과 저술]

김조순의 저서로는 『풍고집(楓皐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김조순은 사망한 뒤 정조의 묘정에 배향되었으며, 경기도 양주의 석실서원(石室書院)과 여주의 현암서원(玄巖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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