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781
한자 黃沁
영어공식명칭 Hwang Sim
이칭/별칭 황토마스,황인철,신거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인물/종교인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성태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756년연표보기 - 황심 출생
활동 시기/일시 1795년 - 황심 주문모 신부 입국을 도움
몰년 시기/일시 1801년 11월 28일연표보기 - 황심 사망
출생지 황심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 지도보기
성격 종교인|천주교 순교자
성별
대표 경력 복자

[정의]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천주교 순교자.

[개설]

황심(黃沁)[1756~1801]은 북경의 천주교회와 연락을 취하며 조선 교회의 실상을 알리고 성직자 영입 및 교회 유지를 위한 협조를 구하는 등 대외 연결의 중추로 활동하였다. 1801년(순조 1) 체포되어 순교하였다.

[활동 사항]

황심은 1756년(영조 32) 예산군 삽교읍 용동리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황인철(黃寅喆), 세례명은 토마스이다. 황심이존창(李存昌)에게서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으며, 매형인 복자 이보현[세례명 프란치스코]을 입교시키기도 하였다. 1795년(정조 19) 주문모 신부의 밀입국 당시 교우들과 함께 국경을 드나들며 입국을 도왔다. 이후 밀사로 임명되어 김유산·옥천희 등과 함께 북경교구와 주문모 신부 및 조선 교회의 연결을 주도하였다. 신유박해[1801년]가 발발하자 충청북도 제천에 은거하던 황사영[세례명 알렉시오]을 찾아가 조선 교회의 상황을 알릴 방도를 모색하였다. 황사영은 백서(帛書)를 작성하여 황심에게 주었고, 황심은 옥천희에게 전달하여 북경의 주교에게 전달하기로 하였다. 하지만 옥천희가 잡히면서 백서사건이 드러나게 되었고 황심도 체포되었다. 황심은 문초 끝에 역모의 죄목으로 참수형을 선고받아 1801년(순조 1) 11월 28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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