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건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784
한자 朴承健
영어공식명칭 Park Seunggeon
이칭/별칭 자이(子以)
분야 종교/유교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고수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9년연표보기 - 박승건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50년 - 박승건 증광문과 병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52년 - 박승건 예조정랑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54년 - 박승건 상주목사랑 역임
몰년 시기/일시 1667년연표보기 - 박승건 사망
성격 문신
성별
본관 밀양(密陽)

[정의]

조선 후기 예산 출신의 문신.

[가계]

박승건(朴承健)[1609~1667]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자이(子以)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박충원(朴忠元), 할아버지는 생원 박호현(朴好賢)이다. 아버지는 정선군수를 지낸 석곡(石谷) 박안행(朴安行)이며, 어머니는 교위(校尉) 조흥무(趙興武)의 딸 한양조씨(漢陽趙氏)이다. 예산에 효자 정려가 있는 박승휴(朴承休)의 동생이다.

[활동 사항]

박승건은 1630년(인조 8) 둘째 형인 박승휴와 함께 진사가 되었고, 1650년(효종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권지정자(承文院權知正字)에 보임되었다. 이어 성균관전적·예조좌랑·병조좌랑 등을 거쳐 1652년에는 정언·사서·직강·예조정랑을 지냈다. 정언으로 있을 때는 형조판서 허적(許積)을 논핵하였으며, 1661년(현종 2)에는 지평·전라도도사를 역임하고 이듬해 장령이 되었다. 1663년에는 종부시정(宗簿寺正)에 올랐고, 진하 겸 사은사의 서장관이 되어 청나라에 들어가다가 지병이 도져서 도중에 돌아왔다. 이때 임무를 마치지 못한 것을 평생의 한으로 삼아 박승건은 그 뒤에도 계속 조정에 사신으로 보내줄 것을 간청하였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그 뒤 제용감정(濟用監正)을 거쳐, 1664년 9월 상주목사로 재직하던 중 관곡을 풀어 굶주린 백성들을 구제하고 민역에 충당한 사실로 가자(加資)[조선 시대에, 관원들의 임기가 찼거나 근무 성적이 좋은 경우 품계를 올려 주던 일]되었다. 우암(尤庵) 송시열(宋時烈)과 친하였으며 박승건의 넷째 딸이 송시열의 손자며느리이다. 송시열이 박안행, 박승휴, 박승건의 묘갈명을 지었다.

[상훈과 추모]

충청남도 보령시에 박승건의 효자 정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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