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창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809
한자 金顯昶
영어공식명칭 Kim Hyun-chang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이성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12년 2월17일연표보기 - 김현창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33년 2월 - 김현창 만경좌 사건으로 징역 8월형 선고
몰년 시기/일시 1951년 2월13일연표보기 - 김현창 사망
출생지 김현창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학교|수학지 영명학교 - 충청남도 공주시
활동지 영명학교 - 충청남도 공주시
활동지 김현창 활동지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남도 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김현창(金顯昶)[1912~1951]은 공주 영명학교 동맹 휴학을 주도하고 일제의 식민 통치를 비난하는 활동을 전개한 독립운동가이다.

[활동 사항]

김현창은 1912년 2월 17일 예산군 오가면 원천4리에서 태어났다. 1930년 12월 공주 영명학교 재학 중 일본인 교사를 배척하는 7개 조항의 진정서를 작성하고 동맹 휴학을 결행한 일로 퇴학 처분을 받았다. 1932년 11월 26일 경성의 극단 만경좌(萬鏡座)가 예산에서 일제를 찬양하고 친일 사상을 조장하는 「동방의 빛」을 상영하는 것을 보고, 다음날 강봉주(姜鳳柱)·김만복(金萬福)·이광섭(李光燮)·윤수덕(尹壽德)·이강오(李康午)·이동순(李東順)·서용하(徐龍河) 등과 함께 극단 대표를 만났다. 김현창은 서용하와 함께 “무릇 조선인으로서 민족의식이 없는 사람이 없다 함이 옳은데, 이 연극에서는 특히 우리 동포가 일본군의 구호를 받는 장면이 있다. 이것을 상연하는 것은 우리들 조선 민족의 치욕으로 우리들이 현재 일본의 지배하에 어떠한 권력도 주어지지 않아 불만을 느끼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헛되이 대중으로 하여금 일본에게 복종하는 것을 감수하도록 하는 것이니 연극 상연을 폐지하라.”라며 연극을 비난하고 상연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김현창은 이 일로 체포되었으며 1933년 2월 공주지방법원에서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51년 2월 1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2010년 대한민국 정부는 김현창의 공적을 기려 건국 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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