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호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818
한자 柳鼎浩
이칭/별칭 춘강(春岡)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시대 근대/일제강점기,현대/현대
집필자 최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5년연표보기 - 유정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27년 - 유정호 신간회 회원으로 활동
활동 시기/일시 1935년 - 유정호 예산에 정착
활동 시기/일시 1945년 - 유정호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예산군지부 회장, 충청남도 예산군애국단체연합회장 역임
활동 시기/일시 1946년 - 유정호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민선의원 당선
몰년 시기/일시 1965년연표보기 - 유정호 사망
활동지 유정호 활동지 - 충청남도 예산군 지도보기
묘소 유정호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 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정치인
성별
대표 경력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민선의원

[정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정치인.

[개설]

유정호(柳鼎浩)[1895~1965]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호는 춘강(春岡)이다. 예산군을 중심으로 활동하였던 독립운동가이며,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민선의원에 당선되어 대한민국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활동 사항]

유정호는 1927년 신간회 회원으로 활동하며 당시 회장이던 월남(月南) 이상재(李商在)를 도와 항일 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 인천 등지에서 독서회와 야간 강습소 등을 운영하면서 우리나라 역사와 한글, 한문 등을 가르쳤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일본군의 요시찰 인물로 감시 대상이 되면서 인천·서산·보령 등지로 이주하였고, 1935년 예산에 정착하였다.

유정호는 예산 정착 이후 1945년 해방이 되자 이승만(李承晩)와 김구(金九)를 중심으로 한 반공·반탁 운동에 참여해 대한독립촉성국민회 예산군지부 회장, 예산군 애국단체연합회장 등을 역임하였다. 1946년 12월 12일 대한민국 정부를 수립하기 위한 관련 법안과 제헌국회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법 등을 제정하기 위해 개원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 민선의원으로 당선되어 1948년 5월 20일까지 정부 수립에 참여하였다. 이후 유정호는 예산에서 제헌국회의원에 입후보하였으나 차점으로 낙선하는 등 여러 활동을 펼치다 1965년 사망하였다.

[묘소]

유정호의 묘는 예산군 봉산면 봉림리의 천주교가족묘지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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