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823
한자 李南珪
이칭/별칭 원팔(元八),산좌(汕左),수당(修堂)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최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5년 11월 3일연표보기 - 이남규 출생
수학 시기/일시 1861년 - 이남규 허전 문하에 입문
활동 시기/일시 1875년 - 이남규 사마시 합격
활동 시기/일시 1883년 - 이남규 권지부정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885년 - 이남규 홍문관교리 제수
활동 시기/일시 1894년 - 이남규 형조참의 제수
활동 시기/일시 1902년 - 이남규 궁내부특진관 제수
활동 시기/일시 1906년 - 이남규 홍주의병 선봉장 선임
활동 시기/일시 1907년 - 이남규 공주감옥에 투옥
몰년 시기/일시 1907년 09월 26일연표보기 - 이남규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62년연표보기 - 이남규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 훈장 독립장 수훈
추모 시기/일시 1977년연표보기 - 이남규 순절비 건립
출생지 이남규 출생지 - 서울특별시
거주|이주지 이남규 거주지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상항리 수당 고택지도보기
묘소 이남규 묘소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지도보기
성격 문신|애국지사
성별
대표 경력 안동부관찰사|궁내부특진관|홍주의병 선봉장

[정의]

구한말 예산군에서 활동한 문신이자 애국지사.

[개설]

이남규(李南奎)[1855~1907]는 한말의 문신이자 독립운동가이며 신채호(申采浩)의 스승이기도 하다. 관직에 있으며 일제에 강하게 대응할 것을 수차례 상소하였다. 낙향하여 의병 활동을 돕다가 일본군에 의해 순절하였다.

[가계]

이남규의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자는 원팔(元八), 호는 수당(修堂)·산좌(汕佐)이다. 아버지는 동부도사를 지낸 이호직(李浩稙)이며, 어머니는 청송심씨(淸松沈氏)이다. 아들은 이남규와 함께 순절한 이충구(李忠求)이며, 손자는 독립운동가 이승복(李昇馥)이다.

[활동 사항]

이남규는 1855년(철종 6) 서울에서 태어나 아버지로부터 한학을 배웠다. 1861년 일곱 살 때 성재(性齋) 허전(許傳)의 문하에 들어가 학문을 배웠다. 1875년(고종 12) 사마시와 1882년 문과에 합격하여 관직에 나갔다. 1883년 외교문서를 관장하던 승문원의 권지부정자에 임명되었고, 1885년 홍문관교리 등의 관직을 거쳐 1894년 형조참의에 이르렀다. 1898년 중추원의관(中樞院議官)을 지내고, 1902년 궁내부특진관이 되었다. 이남규는 관직에 있으며 일제에 강하게 대응할 것을 수차례 상소하였다. 1894년 6월 일본공사 오토리 게이스케[大鳥圭介]가 군대를 이끌고 궁궐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상소를 올려 일본의 무도함을 규탄하였다. 1895년 영흥부사 재임 시 명성황후(明成皇后)가 시해되자 일본에 대한 복수를 눈물로 상소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읍소는 받아들여지지 앉았고, 그해 11월 단발령(斷髮令)을 내리자 관직을 버리고 향리인 예산으로 낙향하였다.

1905년 11월 18일에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우리나라의 국권이 강탈당하자 이남규는 다시 상소를 올려 매국 인사의 처단과 일제에 항거할 것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지속적인 상소 투쟁으로 당시 위정척사 유림을 비롯한 사람들에게 신망을 받게 되었고, 최익현(崔益鉉)은 1906년 4월 전북 태인에서 거의를 도모하면서 이남규의 참여를 요청하기도 하였다.

이남규는 1906년 병오의병 때 홍주에서 의병을 일으킨 민종식(閔宗植)의 활동을 물심양면으로 도왔다. 홍주성에서 일본군에 패하여 피신한 의병장 민종식을 예산 수당 고택의 사랑채인 평원정(平遠亭)에 숨겨 주었다가 1907년 공주감옥에 아들과 함께 투옥되었다가 석방되었다. 그러나 일본 헌병은 이남규가 호서에 있으면 의병 진압이 어렵다고 판단하고 8월 19일 이남규를 다시 체포하였다. 이남규는 온양 송악 평촌 냇가에 이르렀을 때 일본에 귀순하라는 말에 불응하고 일본 헌병을 꾸짖다가 순절하였다. 이때 이남규의 아들 이충구는 아버지를 껴안고 칼날을 막아 보호하려다 먼저 칼을 맞았고, 교구꾼 김응길도 일본 헌병에 대항하다 칼을 맞아 순절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남규의 저서로는 『수당집(修堂集)』과 『기삼비사(記三婢事)』가 있다.

[묘소]

이남규의 묘소는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서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이장하였다. 대술면 방산리에는 일본군에 항거하다 순절한 이남규와 아들 이충구, 교구꾼 김응길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삼절묘(三節墓)가 있었으나 지금은 묘비만 남아 있다.

[상훈과 추모]

1962년 대한민국 정부는 이남규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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