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한수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0826
한자 印漢洙
영어공식명칭 In-Hansu
이칭/별칭 금신(今信)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김진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81년 1월 20일연표보기 - 인한수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4월 3일 - 인한수 독립만세운동 전개
몰년 시기/일시 1919년 04월 03일연표보기 - 인한수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2년연표보기 - 인한수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독립훈장 애국장 수훈
출생지 인한수 출생지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 334 지도보기
거주|이주지 인한수 거주지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 지도보기
활동지 인한수 활동지 - 충청남도 예산군 고덕면 대천시장지도보기
묘소 인한수 묘소 - 대전광역시 유성구 갑동 산23-1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대표 경력 상궁리 통장

[정의]

일제강점기 예산 출신의 독립운동가.

[개설]

인한수(印漢洙)[1881~1919]는 예산군 고덕면 한내장[대천시장]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던 중 일본 헌병의 칼에 찔려 순국하였다.

[가계]

인한수의 본관은 교동(喬桐)이고, 1881년 1월 20일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에서 태어났다.

[활동 사항]

예산 지역 3.1운동은 3월 3일 오후 11시 30분경 윤칠영(尹七榮) 등 여러 명이 예산읍내 동쪽 산 위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친 것이 최초이다. 이후 몇 차례 독립만세를 외치려는 시도가 있었으나 일제의 사전 탐지로 실행에 옮겨지지 못했다. 3월 13일 대흥공립보통학교 학생 300명이 대흥시장에 나아가 독립만세를 외쳤다. 3월 31일에는 예산 읍내에서 약 60명이 헌병 분대와 군청으로 이동하며 독립만세를 불렀다. 본격적인 3.1운동은 4월 3일부터 5일까지 3일 동안 예산 지역 각 면리 지역에서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이 기간 동안의 가장 대표적이고 격렬한 독립만세운동은 고덕면 한내장에서 전개된 3.1운동이다.

인한수(印漢洙)상궁리 마을의 통장으로 활동하던 중 마을 이장인 장문환(張文煥) 등과 함께 4월 3일 한내장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를 부르기로 협의하고 사전에 주민들에게 통지하였다. 4월 3일 한내장에 모인 약 3,000명의 군중이 조선독립만세를 외치자 시장 인근에 있던 헌병주재소에서 급거 출동한 헌병오장 시무라 마쓰다로[志村松太郞]와 헌병들은 해산을 명령했다. 그러나 만세 군중은 헌병의 해산 명령을 거부하고 더욱 거세게 독립만세를 외쳤다.

인한수는 앞장서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외치다가 시무라 마쓰다로의 칼에 목을 찔려 치명상을 입고도 말을 탄 헌병의 다리를 끌어당겨 넘어뜨리고 순국하였다. 이에 장문환과 이인성 등 15~16명의 군중이 인한수의 시신을 운구해 주재소 실내에 안치하고 헌병오장 시무라 마쓰다로에게 거세게 항의하자 헌병들은 시신과 장문환 일행을 밖으로 내쳤다. 장문환이 시무라 마쓰다로의 가슴을 주먹으로 때리며 항거하고 군중들이 호응하자 위기감을 느낀 헌병들은 군중을 향해 발포하였다. 갑작스러운 헌병들의 무력 발포에 만세 군중은 해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묘소]

인한수의 묘소는 예산군 고덕면 지곡리에 있었으나, 국립대전현충원 애국지사 제2묘역으로 이장하였다.

[상훈과 추모]

1992년 대한민국 정부는 인한수의 공적을 기려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예산군 고덕면 대천시장에는 한내장4·3독립만세운동기념탑이 건립되어 있고 좌측에 인한수의 현충비가 세워져 있다. 한내장4·3독립만세운동기념사업회에서 매년 4월 3일 기념식과 독립만세운동 재현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