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028
한자 普德寺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산로 400-74[상가리 227]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1865년연표보기 - 보덕사 창건
문화재 지정 일시 1995년 10월 7일 - 보덕사 극락전 충청남도 유형 문화재 제14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 - 보덕사 삼층석탑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75호로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1984년 5월 17일 - 보덕사 석등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제183호로 지정
최초 건립지 보덕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산로 400-74[상가리 227]
현 소재지 보덕사 -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 가야산로 400-74[상가리 227]지도보기
성격 사찰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 소속 사찰.

[개설]

보덕사예산군 덕산면 상가리에 있는 사찰이다. 흥선대원군이 가야산에 있는 가야사 자리가 왕손을 낳게 한다는 풍수설에 따라 가야사를 태우고 아버지 남연군의 묘를 만들었다. 그 뒤 흥선대원군의 둘째 아들인 고종이 왕위에 오르자 은혜를 갚는다는 뜻에서 절을 짓고 그 이름을 보덕사(報德寺)라 하였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보덕사는 흥선대원군이 집권하기 이전에 풍수설에 의거해 가야사 자리가 왕손이 나올 명당이라 하여 가야사를 불태웠다. 흥선대원군은 가야사 뒤에 있는 5층 석탑을 허물고 그 자리에 아버지인 남연군묘를 썼는데, 그 후 둘째 아들인 고종이 왕으로 즉위하였다. 흥선대원군이 은덕을 보답한다는 의미에서 사찰을 세우고 이름을 보덕사라 하였다. 보덕사를 세운 시기는 1865년(고종 2)이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보덕사는 먼저 덕산면사무소에서 가야산로를 따라 서쪽으로 약 4.4㎞를 가다가 상가리 마을회관에 닿기 이전에 보덕사로 우회전하는 길이 있다. 덕산천의 작은 다리인 보덕교를 건너 이정표를 따라 좁은 아스팔트 길을 오르면 보덕사에 닿는다. 사찰은 가야산 정상과 마주한 서원산 남쪽 기슭에 있다. 근처에 옛 가야사 터남연군묘[충청남도 기념물 제80호]가 있다. 보덕사는 남향인 극락전(極樂殿)이 본전이고, 요사는 4채이다. 그리고 예산읍 삼층석탑보덕사 석등이 경내에 있다.

[관련 문화재]

보덕사 극락전은 1995년 10월 7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45호로 지정되었다. 아미타불을 안치한 불전으로 그 규모는 앞면 3칸·옆면 2칸의 맞배지붕 형식을 갖추고 있으며 방향은 남향이다.

예산읍 삼층석탑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75호로 지정되었다. 예산읍 삼층석탑은 근처 가야사 터에 있었다. 그런데 1914년에 일본인이 몰래 반출하려던 것을 당시 보덕사 주지의 항의로 돌려받아 보덕사에 남게 되었다. 원래는 5층이었던 것이 훼손되어 3층만 남게 되었다. 시기는 고려시대로 추정되고 있다.

보덕사 석등은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83호로 지정되었다. 조성 시기는 조선시대로 추정되고 있으며, 원래 가야사에 있던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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