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036
한자 脫解寺
이칭/별칭 탈의사(脫衣寺)
분야 종교/불교
유형 기관 단체/사찰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수철길 294-117[수철리 444-1]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명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건립 시기/일시 641년~660년 - 탈해사 의각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짐
중수|중창 시기/일시 1975년 - 탈해사 중창
관련 사항 시기/일시 1980년연표보기 - 탈해사 극락전 축조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16년 - 탈해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로 등록
최초 건립지 탈해사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수철길 294-117[수철리 444-1]
현 소재지 탈해사 -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수철길 294-117[수철리 444-1]지도보기
성격 사찰
창건자 이종학
전화 041-334-7798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수철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 소속 사찰.

[개설]

탈해사예산군 예산읍 용굴산[430m]의 8부능선에 있는 사찰이다. 탈해사는 본래 백제 의자왕[재위 기간 641~660년] 때에 승려 의각이 창건하였다고 하는데, 창건 시기의 근거가 문헌으로 뒷받침되는 것은 아니다.

탈해사는 1975년에 이종학(李宗學)이 주지를 맡으며 불사(佛事)를 일으킨 것이 실질적인 시작이고, 이후에 계속해서 불사가 이어졌다. 탈해사의 탈해(脫解)는 속박이나 번뇌의 굴레에서 벗어나 편안한 경지에 도달하게 된다는 해탈(解脫)의 의미를 갖고 있다. 탈의사(脫衣寺)라고도 하는데, 전하는 바에 따르면 고려 초에 후백제의 한 장군이 예산 지역에서 고려군과 싸워서 패하고 이 절이 있는 곳으로 피신하여 갑옷을 벗고 수도를 했고 갑옷을 벗었다는 데에서 탈의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건립 경위 및 변천]

탈해사의 현재 모습은 1975년부터 시작되었다. 원래 예산군 예산읍에 있는 향천사 소속으로서 퇴락하여 돌보지 않던 암자인 것을 승려 이종학이 1975년에 새롭게 불사를 시작하였다. 현재까지 지주로 있는 이종학이 사실상 창건한 셈이다. 1980년 극락전을 본전으로 세우고 그 후에 서서히 다른 불당과 승려들의 생활 공간인 요사(寮舍)를 갖추면서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2016년 예산 수덕사를 본사로 정하여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의 말사가 되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수철교에서 탈해사로 오르는 길가에 청동아미타불이 있고 이어서 칠층석탑이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먼저 범종각이 보이고, 본전인 극락전이 동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극락전 뒤에 자연 샘이 있으나 식수는 우물을 파서 이용하고 있다. 극락전의 북쪽에 접해 있는 명부전은 굴을 파서 조성한 것이다. 그리고 미륵석불, 청동지장보살입상, 구층석탑 등이 있다. 청동상 둘은 실제 재질은 청동이 아니고 청동 느낌이 나는 재질로 처리한 것이다.

[관련 문화재]

문화재는 아니지만, 탈해사의 볼거리는 사찰 경내 바로 북쪽에 접해 있는 ‘장수턱걸이바위’이다. 바위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있다. 옛날에 탈해사 주지의 공양을 시중하던 아리따운 처자가 있었다. 산에서 무술을 연마하고 있던 어떤 장수가 그 처자의 미모를 보고 탐을 내어 주지에게 혼인 허락을 요청하였다. 그러자 주지는 손가락처럼 생긴 바위에서 턱걸이 100번을 하면 허락하겠다고 하였다. 장수는 턱걸이를 99번까지 성공하였지만 마지막 한 번을 채우지 못하고 힘이 빠져 그만 오십 길 벼랑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그래서 그 바위를 장수턱걸이바위라고 하였다고 한다. 장수턱걸이바위는 그 밖에도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린다. 대체로 그 모양과 전설 내용을 본떠서 용바위, 작대기바위, 손가락바위, 오십질[오십 길]바위, 소혀바위, 가새바위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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