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가역말엿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242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음식물/음식물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
시대 근대/일제강점기
집필자 안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최초 조리|제조 시기/일시 일제강점기 - 오가역말엿 제조
지역 내 재료 생산지 오가역말엿 -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 지도보기
성격 향토 음식
재료 수수|엿기름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오가면 역탑리 사람들이 만들어 먹거나 팔았던 엿.

[개설]

오가역말엿은 일제강점기 오가면 역탑리 사람들의 애환이 담긴 음식이다.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겨 생계가 막막하였던 마을 사람들이 궁여지책으로 만들어 먹거나 팔기 시작하였다. 오가역말엿은 한때 서울 지역까지 맛이 알려져 유명해지기도 하였으나 오늘날에는 사라졌다. 역말은 역탑리에 있는 자연 마을 중 하나로 조선시대 시흥도역승에 딸린 일흥역이 있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연원 및 변천]

일제강점기 논밭의 강제수용으로 졸지에 땅을 잃어버린 역탑리 마을 사람들이 자구책으로 엿을 고아 팔기 시작하면서 일명 ‘오가역말엿’이 생겼다. 토지를 잃고 먹고살기 힘든 지독한 가난 속에 태어난 엿으로 당시 역탑리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엿장수였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엿을 만들어 팔았다. 또한 광복 후에는 예산 인근 지역은 물론 서울까지 알려질 정도로 오가역말엿이 유명해지기도 하였다.

[만드는 법]

오가역말엿은 수수를 이용해 엿을 만들었다. 먼저 수수를 물에 담가 불린 후 건져 절구에 빻아 껍질을 제거한다. 껍질을 제거한 수수는 맷돌에 간 후 엿기름과 섞어 삭힌다. 삭힌 수수는 삼베 자루에 넣고 지렛대, 대나무 통을 이용하여 짠다. 그런 다음 불 위에서 눌러 붙지 않도록 저은 후 일명 ‘청잡는다’라고 하는 엿꼬기를 한다. 청잡기는 엿방망이로 엿을 떨어지게 하면서 질고 된 농도 차이가 나게 하는 일이다. 어느 정도 엿이 되면 그릇에 떠 놓은 후 다음 날 새벽 3~4시쯤 일어나 두 사람이 마주앉아 엿을 주고받으며 막대기 형태로 하얗게 만든다. 완성된 엿은 습기가 없는 곳에 잘 보관한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오가역말엿은 어려운 생활 속에 쌀이 귀하고 구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수수로 엿을 고았다고 한다. 엿을 고기 위해선 많은 땔감이 필요하여 인근 산의 나뭇가지까지 땔감으로 사용하였는데 가야산, 대술방산, 차령고개 넘어 유구까지 나무를 하러 가기도 하였다고 한다. 이러한 나무 지게 행렬로 인해 ‘마탕’이라는 말이 생겨나기도 하였다. 마탕은 지게에 나무를 해 오던 마을 사람들이 지게를 내려놓고 잠시 쉬던 자리를 말한다. 체력 소비가 적게 들고 일어나기 쉬운 역간 비탈면으로 지게 행렬이 있었다고 한다. 나무 지게 행렬이 예산 역내다리쯤 오면 부녀자들이 마중 나와 나무 짐을 덜어서 이고 집으로 돌아왔다. 마을 사람들의 지게 행렬은 매일 같이 계속되었다.

역탑리 마을 사람들은 서울로 엿을 팔러 가기도 하였다. 차표 검사원이 엿이나 쌀은 규정상 싣지 못하게 하자 위장을 하고 승차한 후 엿 보자기를 깔고 앉아 검색을 피하는 등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엿을 팔기 위한 노력이 대단하였다고 한다. 오가역말엿역탑리 마을 사람들의 가난하고 고난한 삶의 애환이 깃든 음식이었으나 오늘날에는 사라지고 없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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