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254
한자 金正喜先生古宅-
이칭/별칭 추사고택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유적/건물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용궁리 798]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소령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축|증축 시기/일시 1976년 - 김정희선생고택 정화 사업으로 복원
문화재 지정 일시 1976년 01월 08일연표보기 - 김정희선생고택〈안채.사랑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김정희선생고택〈안채.사랑채〉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현 소재지 김정희선생고택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지도보기
성격 가옥
양식 팔작지붕|맞배지붕
정면 칸수 6칸
관리자 추사고택관리소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추사 김정희의 생가.

[개설]

김정희선생고택은 조선 후기 실학자이며 대표적인 서예가였던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1786~1856]의 생가이다. 증조할아버지 김한신(金漢藎)[1720~1758]이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일대에 자리를 잡으면서 형성되었다. 김정희선생고택은 가치를 인정받아 1976년 정화 사업으로 복원되었다.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충청남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위치]

김정희선생고택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다.

[변천]

김정희선생고택이 형성된 것은 추사 김정희의 증조할아버지 월성위 김한신 때이다. 영조는 김한신을 사위로 맞아들이면서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일대를 사전(賜田)으로 하사하고 충청도 53개 군현에서 각 고을마다 한 칸씩 건립 비용을 분담케 하여 53칸짜리 집을 짓게 하였다고 전한다. 이것이 오늘날 김정희선생고택으로 불리는 월성위 집안의 향저(鄕邸)이다.

[형태]

김정희선생고택은 1976년 정화 사업으로 53칸 집을 반으로 줄여 복원하였다. 전체적으로 서쪽에서 동쪽으로 길게 배치되어 있고 영당, 안채, 사랑채 대문간만 남아 있다. 고택은 크게 안채와 사랑채 문간채로 구성되어 있는데 안채는 6칸 대청과 2간의 안방과 건넌방이 있으며 부엌과 안대문, 협문, 광 등을 갖춘 ㅁ자형의 집이다. 안방 및 건넌방 밖에는 각각 툇마루가 있고 부엌 찬장은 다락으로 되어 있다. 안채의 안방과 건넌방 사이에 있는 대청은 큰 규모이며 대청과 통하는 문은 4분합문으로 亞자형 문이며 각방에서 남향한 쌍여닫이문을 통해 툇마루와 연결되도록 되어 있다.

사랑채는 남향하여 지어진 ㄱ자형 건물로 남쪽에 1칸, 동쪽에 2칸의 온돌방이 있고 나머지는 모두 대청과 마루로 되어 있다. 댓돌 앞에는 김정희가 제작한 석년(石年)이라고 새겨진 석주가 있는데 석주의 그림자로 시간을 측정하였다고 한다. 석주의 크기는 높이 95.5㎝, 폭 28㎝, 두께 26.5㎝이다.

안채와 사랑채는 거의 같은 형식이다. 기단은 잘 다듬은 장대석을 쌓아 반듯하게 처리하였으며 4각 주초석을 올려놓았다. 기둥은 모두 방주(方柱)로 사용하였고 위에는 납도리를 올려놓았다. 대들보에는 키가 낮은 종자주를 놓아 종보를 받치고 위에 중도리를 얹고 종보 중앙에 제형대공을 설치하여 굴도리의 중도리를 받치도록 하였다. 종도리 아래는 장여와 소로가 받치고 있으며 종도리와 주심도리는 간결하게 처리되어 있다. 지붕은 홑처마에 팔작지붕 양식인데 사랑채의 함실 부분에는 지형의 경사가 심하여 맞배지붕으로 층을 지게 하여 적절하게 처리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김정희선생고택은 18세기 중엽의 건축물로 사랑채와 안채가 분리되어 만들어진 전형적인 중부지방 반가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인근에 밀집된 경주김씨 관련 유적과 함께 고향인 예산에서 활동한 김정희의 자취를 느낄 수 있는 유적이다.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