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정리 산신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289
한자 鷄井里山神祭
이칭/별칭 닭재산 산신제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계정1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집필자 유병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시작 시기/일시 1700년대 후반~1800년대 초반 추정 - 계정리 산신제 시작
의례 장소 계정리 산제당 -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계정리 닭재산 지도보기
성격 동제|마을 의례
의례 시기/일시 정월 초사흗날에서 대보름 사이에 택일
신당/신체 계정리 산제당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응봉면 계정리에서 매년 음력 정월 초순에 계봉산 산제당에서 마을의 평안과 발전을 기원하는 마을 제사.

[개설]

계정리 산신제는 매년 새해를 맞아 정월 초사흘부터 대보름 이전에 길일을 택일하여 계봉산 산신령에게 마을의 평안과 발전을 기원하며 지내 왔는데, 예산군 응봉면 계정1리 안달그물계정2리 박달그물 두 마을에서 별도로 전승해 왔다. 제의를 지내는 산의 이름을 따서 닭재산 산신제라고도 한다.

[연원 및 변천]

계정리 산신제는 조선시대부터 200년 넘게 전승되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신제는 마을의 어린아이들이 마마 등 전염병에 걸려 죽는 일이 잦아지자 산신을 위하면 괜찮아질 것이라는 믿음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마을 주민이 고령화되고 기독교 신자가 증가하면서, 산신제에 대한 믿음이 약화되어 박달그물 산신제는 중단되었고, 산신제를 지내는 안달그물 주민들은 별도의 산제계(山祭稧)를 결성하여 전승해 오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계정리 산제당은 안달그물, 박달그물 두 마을 모두 닭재산으로 부르는 계봉산 중턱에 있다. 박달그물에도 당집이 있었으나 오래전에 산신제가 중단되었다. 산제계를 결성하여 산신제를 지내는 안달그물의 당집은 두 칸 규모로, 제당 정면에 좌우로 두 개의 문이 있다. 제당 안은 좌우측 모두 비어 있으며, 좌측 방에는 구들을 놓았다. 산신도 등 별도의 신격을 모셔 놓지는 않았다. 당집 둘레에는 돌담을 쌓아 놓았고, 당집 앞마당에는 절구가 놓여 있다. 산제당 아래에는 이른바 참샘으로 불리는 산제샘이 있어 산제 때 사용한다. 원래는 계봉산 중턱에 평평하게 고른 자연 제장에서 제를 올렸으나, 제물로 올린 떡시루를 놓은 자리에 구멍이 나는 이상이 생기자 산신령이 당집을 지으라는 계시라고 생각하고 당집을 짓게 되었다고 한다.

[절차]

안달그물과 박달그물에서는 별개로 산신제를 지내 왔지만 절차는 비슷하다. 제사는 매해 음력 정월 초순에 길일을 택하여 지내는데, 특별한 일이 없으면 대개 정월 초사흗날로 정한다.

제관은 생기복덕을 가려 제주 세 명과 축관 한 명을 선출한다. 제관들은 산신제가 끝나기 전까지 부정을 타지 않도록 외출을 삼가고 몸가짐을 조심히 한다. 특히, 살생과 비린 음식을 철저히 금해야 한다.

산신제는 오전 중 제관 일행이 산제당으로 올라가면 제물을 마련해서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 올린다. 제관들은 산제당에 오르기 전 참샘에서 목욕재계하며, 제물은 산제당에서 준비한다. 제물로는 시루떡, 소고기산적, 조기, 북어, 김, 미역 부각, 백태 볶은 것, 밤, 대추, 곶감, 청주를 장만한다. 제물을 차리면 분향 강신-초헌-독축-아헌-종헌-소지 올리기 등의 유교식 절차에 따라 제사를 올린다. 소지는 산신 소지, 제주 소지, 가정별 가가호호 소지 순서로 올린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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