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곡리 서낭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298
한자 貴谷里-祭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의례/제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희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의례 장소 서낭댕이[서낭당] -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 지도보기
성격 마을 제의
의례 시기/일시 정월
신당/신체 서낭댕이[서낭당]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에서 지냈던 마을 제의.

[개설]

귀곡리 서낭제신양면 귀곡리 마을 사람 중 ‘습실댁’이라고 불리던 무당이 주도하여 마을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며 음력으로 정월에 지냈던 마을 제의이다. 일반적인 서낭제가 동제 형태를 띤 마을 공동체 의식이었던 반면에, 귀곡리 서낭제는 무당이라는 한 개인이 주도하고, 참여하기를 바라는 마을 주민들이 제의에 참여하는 식의 형태로 이루어지는 특색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연원 및 변천]

귀곡리 서낭제이치리 습실마을에서 시집와서 이른바 습실댁으로 불리던 무당이 주도하여 매년 정월에 제사를 올렸으나, 2018년을 기준으로 30여 년 전에 습실댁이 사망하고 나서 습실댁의 며느리가 몇 년 동안 제사를 올리기는 하였으나 이내 중단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신당/신체의 형태]

서낭당[서낭댕이]은 엄나무골에서 불원리로 나가는 길의 중간에 있었으며, 예전에는 서낭 아래 돌무더기가 있었으나 길을 확장하면서 현재는 나무만이 남아 있다. 서낭당 아래에는 크기가 한 자가 채 못 되는 계란 모양의 돌 한 기가 세워져 있어 서낭과 치성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 지금은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서 사람들이 돌을 발로 굴리며 장난을 하는 경우가 많아져 서낭나무의 가지 사이에 꽂아 두었다.

[절차]

귀곡리 서낭제는 먼저 마을 안의 초등학교 운동장에 서 있는 정자나무에서 시작하는데, 정자나무 앞에 떡, 술, 포 등의 제물을 차려 놓고 치성을 드렸다. 이후 초등학교 뒤편으로 100미터 정도 떨어진 귀곡교에 가서 다시 한 번 제사를 올렸는데, 홍수가 나지 않게 해 달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서낭당에 가서 치성을 드렸다. 정월에 치성을 드리는 것 이외에도 아이를 낳지 못하는 부부들은 습실댁과 함께 서낭나무 아래에서 아기 낳기를 기원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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