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다리기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364
이칭/별칭 줄당기기,줄땡기기,줄싸움,줄쌈,게줄쌈,귀줄싸움,동줄다리기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놀이/놀이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안경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소멸 시기/일시 1943년경 - 예산군 대술면 상항리 줄다리기 소멸
놀이 장소 줄다리기 장소 - 충청남도 예산군
성격 민속놀이
노는 시기 정월대보름

[정의]

충청남도 예산 지역에서 정월대보름에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대동놀이.

[개설]

줄다리기는 두 편으로 나누어 줄을 당겨 승부를 겨루는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이다. 줄다리기는 지역에 따라 줄당기기·줄땡기기·줄싸움·줄쌈·게줄쌈·귀줄싸움·동줄다리기라고 불렸다.

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과 같이 한 해가 시작될 때 하는 집단놀이로서 한 해 농사의 풍흉을 점치는 의례적 성격을 가진 놀이이다. 우리나라 전반에 걸쳐 분포하나 남부지방에 집중되어 있고 대부분 정월대보름에 한다.

[연원]

줄다리기의 역사적 연원에서 대해서는 알기 어려우나, 조선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제주도의 줄다리기를 ‘조리희(照理戱)’라 하였고, 홍석모(洪錫謨)[1781~1850]의 『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는 도삭(綯索)·갈전(葛戰)·조리지희(照理之戱)와 같이 시기와 지역에 따라 달리 기록되었다.

[놀이 도구 및 장소]

줄다리기를 하기 위해서 짚으로 줄을 꼬아 여러 개를 만든다. 여러 개의 줄은 다시 굵게 꼰다. 굵게 꼰 줄은 ‘암줄’과 ‘숫줄’이라고 하여 두 개를 만든다. 줄다리기를 할 때 암줄과 숫줄을 결합시켜 그 사이에 나무를 끼워 줄을 완성한다. 줄다리기는 긴 줄로 한 번에 많은 인원이 하기 때문에 마을의 넓은 공터에서 한다.

[놀이 방법]

예산 지역의 여러 줄다리기 가운데 대술면 상항리에서는 정월대보름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서 하던 줄다리기 놀이가 대표적이었다. 정월 초닷새 경에 풍장패가 마을을 돌며 줄다리기의 줄을 만들기 위해 짚을 걷었다. 이때 짚은 형편껏 내는데, 농사를 많이 짓는 집은 짚을 많이 내고, 적게 짓는 가정은 적게 냈다. 짚이 모두 걷히면, 그 날부터 보름날까지 동아줄을 꼬았다. 얇게 꼰 새끼를 여러 겹 겹쳐서 굵게 꼬았다. 줄은 암줄과 숫줄로 두 개를 만들었다. 완성된 줄의 머리 부분 둘레는 약 60㎝ 정도, 한 줄의 길이는 약 30m 정도였다. 머리 부분은 크고 굵지만 아래로 갈수록 점점 얇아졌고, 몸통에는 잡아당기는 곁줄을 달았다.

정월대보름날 저녁이 되면 마을 중앙을 관통하는 도랑[똘]을 기준으로 도랑 아래와 위로 편을 갈라서 줄을 당겼다. 암줄과 숫줄을 결합하여 그 사이에 밤나무를 끼우는데, 이것을 도랑 위에 놓고 경계로 삼아 줄을 당겼다. 과거에는 도랑 위아래에 각각 40여 호가 거주하였다. 가구 수에 차이가 없으므로 힘이 비등하였다.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모두 나와 줄을 잡았다. 도랑 아래의 지대가 도랑 위보다 낮아 늘상 도랑 아래가 승리하였다. 주민들 또한 도랑 아래가 이겨야 좋다고 여겼다. 질 것 같으면 아예 나무 끝에 붙들어 매기도 하는데, 도랑 아래에 굵은 뽕나무가 있어 이 나무에 줄 끝을 묶고 당겨 이긴 적도 있었다.

줄은 한 번을 당겨 승패를 가렸다.

[생활 민속적 관련 사항]

대술면 상항리에서 줄다리기가 끝나면 사람들이 달려들어 줄을 잘라서 가져갔다. 줄을 가져가면 아들이 없는 경우에 아들을 낳을 수 있다고 하여 많이 끊어 갔다. 줄은 소나 말의 여물로 써도 좋아 마을에서 소를 먹이는 사람이 줄을 통째로 사가기도 하였다. 이때 판매수익금은 마을기금으로 적립하여 사용하였다.

[현황]

대술면 상항리줄다리기는 정월대보름 때마다 마을의 단합과 단결을 위하여 행하였졌으나, 75여 년 전에 중단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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