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계 대감 묘소와 삼신도연지」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6601475
한자 鵝溪大監墓所-三神島蓮池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시대 현대
집필자 표윤명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7년 - 「아계 대감 묘소와 삼신도연지」『예산군지』에 수록
관련 지명 방산리 -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 지도보기
성격 설화
주요 등장 인물 원각|호사|융사|이산해
모티프 유형 유적 유래담

[정의]

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전해지고 있는 이산해의 묘와 삼신도연지에 얽힌 설화.

[개설]

「아계 대감 묘소와 삼신도연지」충청남도 예산군 대술면 방산리에 전해지고 있는 조선 시대의 문신 아계(鵝溪) 이산해(李山海)[1539~1609]의 묘와 삼신도연지에 얽힌 유적 유래담이다. 팔도를 유람하던 세 승려가 천방사(千方寺)에 들렀을 때, 마침 이산해의 장례가 치러지고 있었다. 승려들은 묏자리는 좋으나 물이 없는 것을 보고 천방사와 안국사(安國寺)의 승려들을 동원하여 ‘삼신도연지’라는 연못을 조성하였다. 이후로 한산이씨 문중에서도 천방사를 보전 및 유지하는 데 많은 정성을 들이게 되었다.

[채록/수집 상황]

「아계 대감 묘소와 삼신도연지」는 1987년 예산군에서 발간한 『예산군지』에 실려 있다. 「아계 대감 묘소와 삼신도연지」대술면 방산리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내용]

원각, 융사, 호사라는 세 노승이 팔도의 명산과 유명하다는 절을 두루 돌아보고는 우연히 천방사에 함께 들르게 되었다. 노승들은 하나같이 눈썹이 서릿발같이 하얀 데다 안색은 온화하고 붉은빛을 띠고 있어 마치 신선과도 같은 풍모를 지니고 있었다. 때마침 아계 이산해의 장례가 한곡으로 와서 내곡동에서 치르게 된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노승들은 기뻐하며 방호동에서 상의를 하였다. 세 노승은 아계 대감이 청렴하고 명석한 두뇌로 선조(宣祖)[1552~1608]를 잘 보필하였다며 거듭 칭찬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억울하게 유배되었을 때나 고향에 돌아왔을 때에도 반드시 절을 찾아 부처를 모신 신심을 높이 평가하며 장례에 참가하기로 하였다.

노승들은 영전에서 명복을 비는 독경을 외우고는 묏자리에 올라가 보았다. 묏자리는 옥녀탄금형으로 더없이 좋은데 다만 물이 없어 안타까웠다. 세 노승은 머리를 맞대고 오래 상의하였다. 한동안 말없이 있다가 세 노승이 동시에 무릎을 쳤다. 노승들은 왜 무릎을 쳤는지를 서로에게 물었다. 그러자 노승 원각이 먼저 대답하였다. “아계 대감이 일생 동안 처신해 온 것을 보면 신선을 좋아하고 동경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연못을 파고 삼신산을 만드는 것이 어떠합니까.” 원각의 말에 두 노승도 뜻이 같다며 좋아하였다. 그리하여 아계 대감 묘 앞에 연지 공사가 시작되었다. 연지 공사는 인근의 천방사와 안국사의 승려들도 함께하였고, 세 노승이 각각 100명의 승려를 맡아 감독하였다. 연못을 파 모은 흙은 연못 안에 쌓아 삼신도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렇게 해서 세 노승과 300명의 승려가 삼신도연지를 완성하게 되었다. 이후로 한산이씨 문중에서도 천방사를 보전 및 유지하는 데 많은 정성을 들이게 되었다.

[모티프 분석]

「아계 대감 묘소와 삼신도연지」아계 이산해의 묘와 삼신도연지에 얽힌 유적 유래담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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